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북한의 7차 핵실험 임박설이 제기되는 등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안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무장론’ 등 대북 강경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준석 가처분 리스크’를 털어낸 당이 전당대회 준비 모드에 들어간 가운데, 차기 당권 주자들이 전통적 지지층에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강력한 안보를 내세우며 앞다퉈 ‘선명성’ 경쟁에 나선 것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비대위 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판문점 무력 도끼 만행에 대해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경고했다”며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곧바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임을 힘으로 보여줘야만 한다”고 말했다. 잠재적 당권 주자로 꼽히는 정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일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는 물론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기현·조경태 의원은 한술 더 떠, 현 상황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요건인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독자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의원은 이날 <티비에스>(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대한민국도 핵을 가져야만 북한의 도발을 막아낼 수 있다”고 말했고, 같은 날 김 의원도 “항구적 평화는 구걸과 조공으로 얻을 수 없다. 과감한 자위력 확보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핵무장론에 무게를 실었다.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등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 등을 거론하며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자체 핵무장론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며 “핵이 탑재된 미 잠수함 등을 한반도 영해 바깥에 상시 배치하고 한-미 간 핵공유협정을 맺는 것이 북핵 위협에 대한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권 주자들이 이처럼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안보 의제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당원 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보수층의 45%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군사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중도층(22%)과 진보층(10%)에 견줘 뚜렷이 높은 수치다. 특히 이번 전대에서 ‘역선택’ 방지 차원에서 당원 투표의 반영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차기 당권 주자들이 전통적 지지층인 보수층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강경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당 안팎에선 강 대 강 대결을 부추기는 차기 당권 주자들의 ‘거친 입’이 도리어 안보 불안감만 더욱 고조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강경론만으론) 한반도 주변 정세를 평화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수 없다”며 “실효성 없는 핵무장론 등이 도리어 위기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의 한 중진 의원도 “당권 주자들이 말을 좀 순화해서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