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배경으로 해당 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최강의 전략무기를 완전 무결하게 완성함으로써, 힘있고 존엄 높은 핵 강국의 위대한 위상을 더욱 웅장하게 떠올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지난 18일 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의 개발·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관계자 106명을 지난 26일 대거 승진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완전 무결한 완성’과 ‘더욱 웅장하게’란 표현을 눈여겨 볼 만하다. 북쪽이 이른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5년 전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어서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2017년 11월29일 새벽 이뤄진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 “오늘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 강국 위업이 실현됐다”고 말했다. 당시 북쪽은 ‘공화국 정부 성명’을 내어 “목표로 한 로케트 무기체계 개발의 완결 단계에 도달한 가장 위력한 대륙간탄도로케트”라고 평가했다. 결국 김 총비서는 ‘완결 단계’였던 북의 핵무기 체계가 5년 만에 ‘완전 무결하게 완성’됐다고 주장한 셈이다. 한반도 정세가 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던 5년 전보다 엄중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지난 5년 북한은 두 차례 국가 전략을 바꿨다. 6차례에 걸친 핵실험에 이어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으로 핵탄두와 투발수단을 모두 갖춘 ‘핵무장국’임을 정치적으로 선언한 북한은, 2018년 1월1일 김 총비서의 신년사 발표와 함께 닫아 걸었던 남북관계의 빗장을 풀고, 본격적으로 대미 협상에 나섰다.
특히 북한은 그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긍지 높이 선언하고,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했다. 핵무력 완성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중국이 개혁·개방을 결정한 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와 닮은 꼴”이란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정세는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미-중 수교가 결정된 직후 이뤄졌다. 북-미는 싱가포르(2018년 6월)와 베트남 하노이(2019년 2월)에서 두차례 정상회담을 했지만, 결국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북은 ‘위대한 승리’로 마감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1월5일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 공개한 핵잠수함 개발을 포함한 ‘국방력 발전 5대 중점목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김 총비서는 지난 9월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사회주의의 줄기찬 발전과 번영을 이루는 데서 어떠한 침략위협도 통할 수 없는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차대하고 사활적인 요구”라며 “이를 실현하자면 적들을 압승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건설에 집중하기 위해 비핵화 협상에 나섰던 5년 전과 달리, 이젠 안정적 경제 건설을 위해서라도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음을 뜻한다.
바뀐 전략에 따른 북의 핵무력 강화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단거리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네가지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5년 전엔 미국에 대한 단순 ‘보복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핵무력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5월25일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미사일 2발을 ‘섞어 쏘기’한 것은 북이 이른바 전략핵과 전술핵 능력 강화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18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7차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북의 핵능력 고도화와 함께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미국은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를 통한 대중국 포위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정상이 지난 13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서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선명하게 밝혀 적은 것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중국이란 ‘현상변경 세력’의 부상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조성되고, 한반도 정세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5년 이 구도에 압도돼 정책적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점”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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