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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해요”

등록 2006-03-08 13:44수정 2006-03-09 16:54

지난해 4월8일 시도오후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지사 초청 간담회에서 박근혜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경기지사가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8일 시도오후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지사 초청 간담회에서 박근혜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경기지사가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학법 투쟁의 상처’로 박근혜-이명박 ‘대립’을 보는 법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해요. 그들은 살아남는 법을 아니까요.” (영화 <데미지>에서 안나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슈의 대사)

프랑스 영화 <데미지>의 대사에서처럼, 어떤 상처는 특별히 위험하다.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특별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위험하다 고 영화는 전하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경세가 한비자가 쓴 <한비자>에는 전설 속 영물에게도 특별한 상처가 있다고 적혀 있다. “용(龍)이란 짐승은 길들이면 능히 올라 탈 수도 있으나 그 목 아래에 붙어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逆鱗)’을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그를 죽이고 만다”

거대 야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에게도 각별한 상처가 있음이 최근 확인되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린 자에 대한 거센 분노는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린 자는 반드시 죽이고 만다는 ‘역린지화’라는 옛말을 떠올리게도 한다. 왜 유력 정치인은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갖게 되었을까?

박근혜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사학법 투쟁을 둘러싼 박 대표와 이명박 시장간의 대립을 살펴본다.
[편집자]

사학법 아픈 상처에 삐치고, 이명박 대세론에 울고

“바닷가에 놀러온 사람들 같다. 지금까지 계속 밖으로만 돌면서 사학법 투쟁하고 있을 것 생각해 봐라. 끔찍하다.”(3월3일 이명박 서울시장)

“어려울 때 마치 당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당을 희생양 삼아 개인플레이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3월6일 박근혜 대표)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후보인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로를 향해 “끔찍하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일전불사의 긴장감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상대를 향해 퍼부은 날선 공격은 ‘최연희 성폭행 사건’과 ‘디제이 치매발언’ 등 최근 잇따른 한나라당의 여러 악재에 대한 책임공방의 성격을 넘어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려 두 진영의 물밑 경쟁이 분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야당 대표로 거대정당을 이끌고 있는 박 대표는 왜 “좌시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절박함이 묻어나는 비판으로 불안함을 내비쳤을까?

왜 발끈? 사학법, 아픈 상처를 건드리다니?
사학법 장외투쟁은 사실상 박 대표의 ‘개인플레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해 9월20일 이명박 서울시장의 초청으로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청계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해 9월20일 이명박 서울시장의 초청으로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청계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박 대표가 지난해 말 사활을 걸었던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 시장이 헐뜯은 게 발단이었다. 박 대표는 국민 여론은 물론 당내 반발에도 “국가정체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색깔론을 제기하며 사학법 개정에 온몸을 던졌다. 박 대표는 장외투쟁을 비판하며 등원을 요구하는 비주류 의원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인데 불필요한 싸움인가”라며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인이 모든 것에 앞서 지킬 필요가 있다. 이것을 못하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원희룡 의원은 박 대표에 대해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이념병’이라고 생각한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 대표는 원 의원을 향해 “당 대표가 ‘이념병’에 걸렸다는 식의 인식공격성 인터뷰를 했는데,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박 대표는 특히 “원 최고위원이 그동안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생각을 대변해 왔는데 한나라당과 당 대표는 다 그렇게 잘못됐고 열린우리당은 다 잘했다는 얘기냐”며 “한나라당이 아무리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고 진노했다.

이처럼 박 대표는 정체성과 이념 문제에 대한 당 안팎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사학법 장외투쟁에서 구호로 내걸었던 ‘사학법 재개정’을 쟁취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국회로 돌아온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

박 대표에게 사학법은 아물지 않은 ‘아픈 상처’다. 과민반응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차원에서 보자면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장외투쟁’도 개인플레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대표라도 당내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인 자기 신념에 따라 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악재, ‘박근혜=선거불패’ 공식 깨질까?

박 대표의 이 시장 견제 발언이 나온 시점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오는 공천잡음, 최연희 사무총장의 기자 성추행, 전여옥 전 대변인의 ‘디제이 치매발언’ 등으로 당의 이미지는 추락했고 40%를 달리던 지지율도 주춤거렸다. 한나라당의 위기는 당의 간판인 박 대표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대로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박근혜=선거불패’라는 신화가 무너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박 대표는 이 시장을 향해 “당이 여러 사건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으면 언행에 자중하면서 신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당이 잘될 때는 깎아내리려 하고 어려움에 빠지면 뒷짐 지고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너진 당 기강을 다잡으려고 경쟁자인 이 시장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배가시키려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는 초조하다…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확산되는 ‘이명박 대세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의근 경북도지사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의근 경북도지사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이라는 장기적 구도에서 보더라도 박 대표의 발언은 심상치 않다. 언론과 정치권은 두 사람의 설전을 대선 전초전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절박함이 묻어나는 쪽은 박 대표다.

이 시장은 지난해 9월 이후 청계천 특수를 등에 업고 차기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박 대표를 10%포인트 이상 여유있게 따돌리고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이 시장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재오 원내대표 등이 당의 지도부에 입성하고,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결속력을 높여가는 등 당 안팎에서 ‘이명박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대선경쟁의 전초전이 될 지방선거가 이 시장의 영향권 안에서 치러져 한나라당이 압승하더라도 공이 이 시장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명박 대세론은 더욱 확산된다.

“이명박 시장 경박하다. 자만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한편, 두 사람의 신경전을 놓고 여론은 곱지 않다. 비판은 이 시장을 향해 쏟아진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자만이 도를 넘었다”거나 “적전 분열”이라며 이 시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7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며 “제 정신이냐”고 크게 화를 냈다. 이 의원은 “당이 지금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해변에서 논다느니 그런 말을 하느냐”며 “말이 안 된다”고 꾸짖었다.

‘친박파’로 분류된 한선교 의원은 당 홈페이지 글에서 “지난 세월 차떼기 등 한나라당의 원죄는 쉽게 씻어지지 않겠지만 나를 비롯한 60여명의 당내 초선 의원들은 적어도 그런 부끄러운 경험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한 의원은 이 시장이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는 강금실 전 장관을 “놀기 좋아해 시장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린 것에 대해 “최연희 선배의 부적절한 행동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과거 두 차례 대선에서 다 됐다고 생각한 마음 속의 ‘자만’이다”며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도 6일 성명을 내어 “이명박 시장이 지지율 좀 높게 나온다고, 분위기 업되어서 여기저기에서 사고를 치고 있다”며 “경박한 발언으로 경쟁자로부터 공개적인 면박을 받은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규의 부대변인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표마저 회초리를 들었지만 제왕적 이기주의에 빠진 이 시장에게 그 매질이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무자비한 개발독재의 황태자에서 대권주자로 겁 없는 정치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이 시장은 ‘국민의 매’로서 망언과 악행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서 누리꾼 ‘ksk2782’는 “지금 대권 놀음으로 개인 플레이 할 때인지, 아니면 똘똘 몽쳐 무능한 정권으로부터 국민을 구출하는데 힘을 쏟을 때인지 생각하기 바란다”며 “적전 분열은 곧 죽음”이라고 말했다.‘psk7087’는 “외곽에서 당을 흔드는 발언을 하는 것보다 당의 중심부에 들어와서 당을 스스로 부수고 새롭게 변화된 창조적 정당화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대선주자 1위 다운 모습”이라며 “아니면 떳떳하게 한나라당을 떠나 이명박 시장의 이념에 맞는 새로운 당을 창당하라”고 지적했다.

결국 두 사람의 대선 전초전은 박 대표에게는 사학법의 안 좋은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이 시장은 ‘자만하다’는 비판을 듣는 등 상처만 남겼다. 두 사람의 경쟁은 상생이 될 것인가? 상극이 될 것인가? 지방선거가 끝나면 당권과 대권을 놓고 두 사람의 충돌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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