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총리 접견실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우수 연구원 시상식을 마친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총리가 3.1절에 골프를 친 문제로 시끄럽다. 신문에 연일 보도되는 내용은, 필드에 나가는 것보다 더 재밌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일제에 맞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했던 뜻 깊은 날에 총리가 한가하게 골프를 친 것에 대한 타박 정도였던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이 커지고 있다.
아마,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흔쾌하게 저간의 사정을 밝히지 못한 총리와 그 주변 사람들의 탓이 크지 않은가 싶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사려 깊지 못한 처신과 문제 사태를 대하는 부정직한 태도이다. 사려 깊었다면 없었을 일이 발생한 것이고, 기왕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일의 전모를 밝히고, 앞으로 신중을 기하겠다고 했다면, 별 일 아니었을 것이다. 총리는 영국이나 호주의 총리가 아니고 한국의 총리인 이상, 한국적 상황에 밀착된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서 골프는 그 경계가 분명한 스포츠이다. 골프 애호가들은 골프가 지니는 여러 긍정적 측면을 나열한다. 자연 속에서 큰 힘 안 쓰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격정적 투쟁적이기 보다는 몰입과 집중의 측면이 강하고, 상대를 기다리는 여유와 인내를 배울 수 있고, 잔디밭을 거닐면서 때로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상의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은 것이니, 골프 그 자체로는 훌륭한 스포츠라는 것은 설득력을 지닌다. 최근에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예전 같이 일부 특별한 사람들만이 즐기는 것은 아니니, 골프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골프의 대중성을 강변하는 매니아들의 설득력 못지않게, 연령상으로 볼 때 30대 미만의 사람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고, 경제적으로 볼 때 중산층 수준이 아니고서는 골프용품을 사기 두렵고, 중하위 공직자들은 이러저러한 눈치 때문에도 골프장 기웃거릴 수가 없다. 그것만인가.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수입 잔디와 맹독성 독약으로 사철 푸른색을 띠는 골프장은, 백두대간을 난도질하고 한적한 마을을 유원지로 전락시키고, 지역민들을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는 흉물로 여긴다. 계층의 측면에서, 의식의 측면에서 그 자체로 수준 높은 스포츠인 골프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 수준의 거부감은 현실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의 행태는 비상한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호재를 만난 것이다. 대서특필 되는 지면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골프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을 이용하고 정서적 자극과 작은 것을 부풀리는 침소봉대는, 범상치 않은 관록의 경지임을 실감케 한다. 물론 현재 문제 되고 있는 것은 골프를 쳤다는 것만은 아니다. 국경일에 골프를 치고, 함께 했던 인사들이 로비의 혐의를 받고 있고, 내기의 소지가 있는 게임을 했으며, 해명의 과정도 정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중동 역시 이런 점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마치 십수년간 윤리와 도덕을 연마한 사람들의 척도 마냥 엄정하고 엄격하다.
이해찬 총리가 사퇴할 것인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경질될 것인지는 조만간 결정이 날 것 같다. 그리고 그 진퇴를 결정짓는 중요 요인은 도덕성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요인에 따를 것이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어쨌든 골프가 아직도 대중적이 못한 점도 분명하기에, 국민들 정서도 총리의 행태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더 우세하다.
그럼에도 생각해 보는 것은, 일시적 일회적 성격이 [짙은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이 총리직을 사퇴해야 할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비판과 질책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공직을 사퇴하거나 경질 당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것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총리의 행태가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이고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지만, 국정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공직자가 이미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국민들로부터 따끔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것으로 부족해 총리직까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어쩐지 과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심사가 마땅치 않은 것은 지금 이해찬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수구 언론들이 내세우는 척도가 우리 사회에 통용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이미 자신들부터 국민들에게 대죄석고하고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식민지 치하부터 군사정권 시절까지 그들이 보여 주었던 악페를 생각하면, 과연 그들이 3.1절 골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고,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고 신문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이 도덕과 윤리를 강변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골프가 문제가 아님 것임은 분명하다. 골프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이긴 하지만, 정치적 힘겨루기가 골프장으로 옮겨간 것뿐이다. 이해찬 총리 역시 골프가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고, 자신의 행보에 대해 보다 명쾌한 해명과 진솔한 사죄부터 해야 한다. 부적절한 실수가 일회적이었다면, 그 실수를 밝히고 사과하고, 그런 다음에는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옳다. 국회에서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일갈했던 그 당당함은 어디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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