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만난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 사진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야마모토 세이타(70) 변호사는 1992년 부산의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을 대리해 일본에서 1심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전후보상 전문가다. 이 판결은 일본 사법부가 일본 정부의 위안부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관부재판’으로 불리는 이 재판을 이끌었던 야마모토 변호사가 양금덕(94)씨를 처음 만난 건 30년 전인 1993년이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관부재판 3차 원고로 참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양씨의 대리인으로, 그때 처음 태평양전쟁 말기 미쓰비중공업의 항공기 제작소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던 양씨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약 15년, 야마모토 변호사는 양씨와 일본의 법정에서 싸웠지만 패소를 거듭했다. 10년이 더 지난 2018년 11월 한국에서 대법원 판결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받고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이 아닌 한국의 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한다는 ‘해법’(제3자 변제)을 발표하면서 양씨를 비롯한 3명의 생존 피해자들은 고국에서도 일본의 사과를 받을 자리를 또 한 번 빼앗겼다.
일본에서 이 과정을 쭉 지켜본 야마모토 변호사는 “가해자가 아닌 재단이나 정부가 돈을 내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며 “한국과 일본은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사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는 표면적인 개선일 뿐 결국 언젠가 다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해법’ 발표 직후 한-일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고 오는 19일부터 히로시마에서 열릴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선 한·미·일 3국이 만나 안보 협력 방안을 논할 예정이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과 미국 정부는 군사적 영역의 협력에만 관심이 있을 뿐 피해자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해법 발표는) 일본의 완전한 승리 아닌가”라며 “이런 식의 문제 해결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는 더욱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용수씨 등 ‘위안부’ 피해자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의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지난 9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 법정에 서기 앞서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난 야마모토 변호사는 “양국은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인권 문제’가 아닌 ‘외교 관계’의 장애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본격적으로 판결금 지급에 나서면서 원고 15명 중 10명의 유족들이 정부 방안을 수용했다. “한국 정부의 해법은 판결금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시키고, 유족이나 피해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도 생긴다”며 “결국 피해자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 문제를) 일본과 한국 사이의 장애물로 봤기에 이런 방안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장애물은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은 일본 기업과 정부였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 한국 법원에서 패소하면 이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피해자들이 인권을 주장해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거부토록 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태도가 양국 관계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야마모토 변호사는 과거사 피해자들이 인권을 회복할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은 한국에 있다고 믿는다. 과거사 피해자를 위해 일본에서 싸운 그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의 법정에 서기로 결심한 이유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청구권 포기 조항에 따라 피해자 개인은 배상청구권이 있어도 재판을 통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는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인해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 수단이 봉쇄된 것이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일으킨 국제법 위반 사항으로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선 안 된다”며 “일본에서 수십년에 걸쳐 재판을 했지만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었다. 국제기구의 중재 노력도 있었지만 일본의 반대에 부딪쳤다. 2007년 이후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절대 승소할 수 없다. 한국에서의 재판은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당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사견임을 전제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분들이 힘든 경험을 한 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은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도 했던 말이다. 기시다도 한국에서 대통령을 만났으니 아베가 말한 적이 있는 표현 정도로 우익 정치인들의 비난을 피하고자 했을 것”이라며 “이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사과를 하고 싶었다면 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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