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ㆍ정자법 위반…공천권 인정되면 배임수재도 적용
한나라당 공천비리 의혹 수사는 김덕룡, 박성범 의원이 실제 공천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에 따라 사법처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두 의원이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돈이 오간 사실 관계는 시인하고 있어, 공천권과 대가성의 관계를 규명하는 게 수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공천권 인정되면 배임수재죄 가능 = 공천 대가로 받은 금품은 뇌물 성격을 띠고 있지만, 공천은 국가 조직이 아닌 정당 업무와 관련있기 때문에 공무원 수뢰를 처벌하는 뇌물죄 적용은 어렵다.
실제로 검찰은 그동안 공천 헌금과 관련된 사안을 처리할 때 정치자금법, 선거법 위반을 적용했다.
정치자금법 제32조는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인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해 정치자금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직선거법 제117조는 누구든지 선거에 관해 정치자금법 제31조 규정에 따라 기부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이례적으로 검찰은 지난해 3월 동대문구청창 출마 희망자로부터 공천 대가 등의 명목으로 2억1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을 불구속 기소할 때 정치자금법 위반과 배임수재죄를 적용했다.
당시 검찰이 김희선 의원을 배임수재죄로 기소한 것은 선거 후 6개월이라는 선거법의 공소시효를 감안한 고육지책이었다.
김 의원이 돈을 받은 시기는 2002년 3~4월로 선거법 공소시효는 완성됐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면서 "배임수재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김희선 의원)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구당 위원장'의 지위에서 돈을 받았음이 밝혀져야 하나 그런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정당에서 위임받은 공정한 경선관리 의무에 반(反)해서 공천헌금을 받았다고 보고 배임수재죄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명백히 공천권이 있었는지가 불분명하다며 정치자금법 위반만 유죄를 선고했다.
한나라당은 올해 지방선거부터 공천 시스템을 대폭 바꿔 기초단체장과 광역ㆍ기초 의원 공천권을 16개 시ㆍ도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위임했다.
박성범 의원은 서울시당위원장이었지만 공천심사위원회에는 간여하지 않았다. 김덕룡 의원 역시 지역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옛 지구당 위원장)일뿐 공천심사위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 공천 시스템을 놓고 한나라당 안팎에서 지역구 의원과 당원협의회 운영 위원장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일찌감치 나온 점을 감안하면 두 의원의 실제 권한을 놓고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배임수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선거법보다 형량이 높다.
◇ 수사 빨리 이뤄질 듯 = 두 의원은 의혹이 불거진 뒤 부인이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돌려주려 했지만 상대방이 거절했다고 해명했다.
경위야 어쨌든 돈을 받은 것은 시인했기 때문에 검찰이 사실 관계를 규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치인 관련 수사가 진행되면 정당 죽이기라며 방탄 국회를 열곤 했던 점 때문에 소환 시기를 놓고 속을 끓였던 검찰도 이번에는 정당이 소속 정치인의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러나 박성범 의원은 케이크 상자 속에 돈이 들어있는지는 몰랐고, 나중에 돌려줬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어 사실 관계를 확정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릴 수도 있다.
부인들이 돈받은 사실을 몰랐다며 두 의원이 완강하게 부인하면 공천 헌금을 건넨 사람들과 부인들만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의지와 관련된 부분이라 언급하기 적절치 않지만 돈 받은 사실을 몰랐다면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액 공천헌금을 중대 선거범죄로 보고 5억 원의 포상금을 내거는 등 강력한 처벌 의지를 보인 점에 비춰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법행위를 철저히 밝혀 엄단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3명에게 각각 50만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된 서찬교 성북구청장은 현직 구청장 신분임에도 법원에서 기각되기는 했지만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검찰은 선거와 관련해 100만원 이상 금품을 제공하면 구속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이번 수사가 진행되면 구속자가 나올 수도 있다.
또 두 의원의 혐의를 한가지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되는 `상상적 경합' 사안으로 보고 정치자금법ㆍ선거법 위반에 배임수재 혐의를 동시에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선거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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