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내내 고심 거듭
김원기 국회의장은 1일 ‘본회의 직권상정’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지둘러’(기다려)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신중한 스타일이지만, “중요한 법안이 정쟁에 발목이 잡혀 처리되지 않는 것은 국회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김기만 국회의장 공보수석이 전했다.
더구나 김 의장은 오는 29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5월 임시국회가 소집되지 않는 한, 2일 본회의는 그가 법안 처리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사회를 보는 자리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김 의장은 그동안 일관되게 법치주의 원칙을 강조해왔다”며 “퇴임을 앞두고 국회가 아무런 일도 못하는 것을 방치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촉박한 일정도 그의 결심을 재촉한 것 같다. 김 의장은 5일부터 14일까지 세계의원연맹 총회 참석차 케냐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김 의장은 일찌감치 2일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고 한다.
김 의장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권상정이라는 ‘칼’을 빼든 것은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가 유일하다. 당시 김 의장은 중재안까지 제시하고 여러 차례 심사기일을 연기하며 여야의 사학법 절충을 종용했지만, 여야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직권상정을 결정했다.
김 의장은 이날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원내대표단을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여당이나 대통령이 요구한다고 내 판단과 다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야당의 시위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원칙을 강조했다. 그리고 여당이 요청한 16개 법안 가운데 ‘최소한의 요구’만 들어줬다.
의장실 주변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의장실 관계자는 “의장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춰주기는커녕, 여야가 일을 벌여놓고 의장한테 수습을 떠넘겼다”고 하소연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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