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표 테러 공범 몰렸던 박씨의 악몽같은 사흘
공범 몰리고 가족·동료까지 취재진에 시달려
공범 몰리고 가족·동료까지 취재진에 시달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의 공범으로 몰렸던 박아무개(52)씨가 결국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면서,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과잉 수사와 일부 언론의 성급한 실명 보도에 따른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일 오전 초등학교 동창생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동작구 사당동 집을 나섰다. 이 때만해도 자신이 ‘뉴스의 인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전 11시께 마포구 아현동에서 동창 친구들을 만난 박씨는 점심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들의 술자리는 결혼식이 끝난 뒤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 식당까지 이어졌다. 저녁 7시가 넘어 만취한 박씨는 친구들과 헤어져 사건 현장에 다다랐다. 마침 지아무개(50)씨가 연단에 오르던 박 대표의 얼굴을 흉기로 그어 유세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때 박씨는 갑자기 연단 위로 뛰어올라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목격자들은 박씨가 “한나라당은 모두 도둑놈들이다, 박근혜 대표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진술했다. 박씨는 연단 주변에 있던 한나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한 박씨는 곧 지씨의 공범으로 몰렸다.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열린우리당 당원이고 매달 2천원씩 당비를 낸 사실을 밝히면서 지씨와 박씨의 공범 의혹은 더욱 커졌다. 박씨의 사무실과 집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수많은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울렸다. 〈조선〉, 〈동아〉, 〈중앙〉 등 일간신문과 〈에스비에스〉,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매체는 박씨의 이름 석 자를 그대로 공개하면서 그의 과거 행적과 정치적 성향 등을 보도했다. 그의 가족과 직장동료 등도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됐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박씨는 “술에 취해 아무런 기억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2일 선거의 자유 방해와 재물손괴 혐의로 박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곳곳의 유세현장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벌어지지만 구속영장까지 청구되는 일은 드물다. 합동수사본부는 “박 대표 피습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가세해 저지른 범행이라 죄가 무겁고, 공범이 있을 것이라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박씨가 공범과 입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24일 저녁 6시40분께 영장이 기각되면서 박씨는 사흘만에 풀려났다. 수염도 깍지 않고 지친 표정으로 서울서부지검 정문을 나서는 박씨에게 수십명의 기자들이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었다. 아무런 대답을 않던 박씨는 마중나온 부인을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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