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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선거운동 새 풍속도] 같은 당 후보 후보끼리도 서로 싸워?

등록 2006-05-26 19:23

한나라 위력, 유니폼·펼침막 너도나도 파란색
선거구 두세배 넓어져 무소속 “힘들어”
디카·폰카 등 감시 촘촘…돈 살포 주춤
같은 당 소속 후보들끼리 싸우고, 무소속 후보들은 더 힘들어지고….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때는 보기 어려웠던 풍경들이 5·31 지방선거의 풀뿌리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도 정당 공천을 받고,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는 등 정치환경이 달라진 탓이다.

같은 당도 ‘적’이다=한 선거구에서 2~4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한솥밥’을 먹던 같은 당 소속 후보들끼리 감시·비방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정 정당이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공천함에 따라, 공통의 지지층을 놓고 ‘영역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후보자들이 몰린 한나라당에서는 “선거 끝나면 같은 당원끼리 원수가 되겠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 후보 세명이 모두 당 지지층이 밀집된 특정 동에 유세를 집중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은 “후보들끼리 구역을 나눠, 경계를 넘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유세차량 수, 현수막 수 등 같은 당 후보가 선거법을 어기는지 감시하느라 다른 당 후보의 유세 감시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양천구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같은 당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표찰을 달지 않았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기호 순서를 놓고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한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같은 정당 소속 후보가 2명 이상일 경우 이름의 가나다 순에 따라 기호를 정한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 후보는 ‘1-가’, ‘1-나’ 등이고, 한나라당 후보는 ‘2-가’, ‘2-나’ 등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 기호를 받은 후보의 지지율이 ‘나’ 후보보다 30%포인트 정도 높게 나온다”며 “후보들이 ‘기초의회에는 강씨나 권씨, 김씨만 있겠다’고 농담조로 하소연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나선 성아무개(55)씨는 이름의 가나다 순에 따라 기호를 배정하도록 한 선거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5·31 지방선거를 닷새 앞둔 26일 서울 강동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이 한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i.co.kr">jongsoo@hani.co.kr</A>
5·31 지방선거를 닷새 앞둔 26일 서울 강동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이 한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무소속은 더 힘들어”=무소속으로 기초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정당공천제의 최대 피해자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선거구제가 도입돼 선거구가 과거에 비해 두세 배 넓어지면서 선거운동에 ‘조직’과 ‘돈’이 훨씬 중요해졌고, 결국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권자 입장에서는 기초의원 후보 수가 지난 선거에 비해 세배 이상으로 늘어나, 무소속 후보들에 대한 관심은 더 떨어지는 형편이다. 이번 기초의원 선거에는 한 선거구당 평균 7.78명이 출마해, 2002년의 2.4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후보자가 10명이 넘는 곳도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지난 1995년 이후 지방선거 때마다 전국적으로 50명 안팎의 후보를 배출해 30~60%의 당선률을 보여온 환경운동 출신 ‘녹색후보’들도 예외없이 고전을 치르고 있다. 어려운 여건을 예상한 탓에, 후보 수도 26명으로 줄었다.

무소속으로 경기 고양시 의원 재선에 도전하는 김달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지난번에는 800만원으로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에는 유권자들에 보내는 홍보물 비용이 두배 이상 드는 등 이미 2천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공천제가 아닐 때에는 유권자들이 모든 후보를 놓고 따져봤지만 이번에는 기호 6번 이후(무소속)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나를 알리려면 ‘파랗게 파랗게’=지방선거에 강한 한나라당의 위력이 이번에는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으로 겉잡을 수없이 커지자, 이에 교묘하게 편승하려는 모습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무소속 후보들이 유니폼을 한나라당 상징색인 파란색 계통으로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현수막 배경을 파란 하늘로 깔아놓는 열린우리당 후보들까지 있다.

울산 중구의 한 기초의원 후보는 한나라당의 인기가 치솟자 자신의 명함에 자신이 속한 당 이름은 보일듯 말듯 작게 넣고 기호와 이름은 파란색으로 적었다. 주민 박아무개씨는 “명함을 처음 받고 한나라당 후보인줄 알았다가 구석에 적힌 글씨를 보고 한나라당이 아닌 줄 알았다”며 “당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자신을 공천한 당을 외면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극악스런 선거운동도 줄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의 한 구의원 후보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낮 시간에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확성기 유세를 자제하고 있다”며 “옛날식의 요란한 선거운동이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다른 후보는 “아파트 주민들이 유세차 진입을 막아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의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조용한 선거를 표방하며 가급적 로고송을 틀지 않고 자전거 유세단을 꾸려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감시 수단의 발달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부산지역 선거를 돕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성능 좋은 디카(디지털 카메라)와 폰카(휴대전화 카메라)가 널리 보급돼 시장통에서 어묵 하나, 커피 한 잔을 사 먹어도 사진이 찍혀 기부행위로 걸릴까봐 철저히 갹출해서 내고 있다”고 말했다. 황준범 성연철 기자, 지역종합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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