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일오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전수영/정치/2006.6.1(서울=연합뉴스)
정치인생 11년만 최대위기…재출마도 쉽지 않을듯
"현애철수장부아"(縣崖撤手丈夫兒.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참된 대장부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1일 취임 104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7대 총선직후인 2년전에도 의장직에서 사퇴한 적이 있지만, 박수를 받으면서 대권수업을 받기 위해 당을 떠났던 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여당 사상 최악의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기약 없는 `백의종군'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정 의장은 기자실에서 "선거 패배의 모든 책임은 당을 이끌고 선거를 지휘한 당의장에게 있다"는 내용의 사퇴 선언문을 낭독했다. "가장 낮은 곳에 서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데 땀 한 방울이라도 보태겠다"는 글귀를 읽는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가라 앉아 있었고, 눈가에는 희미하게 물기가 맺혔다.
5분여간의 회견문을 낭독한 정 의장은 기자들과 문답도 없이 퇴장해 곧바로 승용차에 올랐다. 염동연(廉東淵) 사무총장, 박명광(朴明光) 비서실장, 우윤근(禹潤根) 수석비서부실장, 김낙순(金洛淳) 수석사무부총장, 박영선(朴映宣) 대변인 등이 정 의장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정 의장은 이날 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취임 직후부터 하루도 쉬지않고 전국을 순회해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 의장은 허리통증과 기침증상으로 잠을 못 잘 정도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입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정 의장은 육체적인 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주변에서는 정 의장이 차기 대권도전 여부도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대권의 꿈을 접은 단계는 아니지만, 자신의 정치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성찰할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의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7.26 재보선에서 서울 성북을 등에 재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도 떠돌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선거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지 한달만에 다시 나타나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대권도전을 포함한 정치일정 조정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생 11년만에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 의장은 정계입문 이후 수직상승만을 거듭해 왔다.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영입된 정 의장은 전주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면서 화려하게 정치인생의 스타트를 끊은 뒤 대중적 인기를 자양분으로 `성공시대'를 구가했다. 국민의 정부 중반 `권력의 2인자'였던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을 겨냥해 정풍운동을 펼치면서 동교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은 위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성장의 발판이었다. 정 의장은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으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비례대표직 포기라는 카드로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 의장은 거대한 민심의 벽 앞에 선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정 의장은 2.18 전당대회 당시만 하더라도 "올 봄 개나리꽃이 필 무렵 우리당 지지율 1위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 "5월31일 지방선거 출마자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빨간 장미꽃을 달아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선거 막판에는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읍소를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좌절감은 정 의장이 당내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전날 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을 만나 "내가 십자가를 쥐고 갈 테니 김 최고위원이 당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이번 시련을 이겨낸다면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 그의 향후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 (서울=연합뉴스)
주변에서는 정 의장이 차기 대권도전 여부도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대권의 꿈을 접은 단계는 아니지만, 자신의 정치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성찰할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의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7.26 재보선에서 서울 성북을 등에 재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도 떠돌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선거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지 한달만에 다시 나타나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대권도전을 포함한 정치일정 조정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생 11년만에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 의장은 정계입문 이후 수직상승만을 거듭해 왔다.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영입된 정 의장은 전주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면서 화려하게 정치인생의 스타트를 끊은 뒤 대중적 인기를 자양분으로 `성공시대'를 구가했다. 국민의 정부 중반 `권력의 2인자'였던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을 겨냥해 정풍운동을 펼치면서 동교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은 위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성장의 발판이었다. 정 의장은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으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비례대표직 포기라는 카드로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 의장은 거대한 민심의 벽 앞에 선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정 의장은 2.18 전당대회 당시만 하더라도 "올 봄 개나리꽃이 필 무렵 우리당 지지율 1위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 "5월31일 지방선거 출마자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빨간 장미꽃을 달아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선거 막판에는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읍소를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좌절감은 정 의장이 당내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전날 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을 만나 "내가 십자가를 쥐고 갈 테니 김 최고위원이 당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이번 시련을 이겨낸다면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 그의 향후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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