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전후배상 촉구’풀이
일본은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담긴 과거청산 노력 촉구의 강도가 이례적으로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엔에이치케이> 등 일본 주요 신문과 방송은 1일 노 대통령 발언 내용을 다루며, 특히 한-일 협정을 통해 마무리된 것으로 간주해온 식민지배 배상문제를 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배경과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사히신문>은 1일 석간 1면 주요기사로 이를 보도하면서 지난해 7월 제주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임기 중에는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미래지향을 강조해온 노 대통령으로선 이전에 없던 단호한 어조로 과거청산과 전후배상 문제에 대한 일본의 노력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 일본 쪽의 역사인식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며, 한국의 국민감정에 대한 일본 쪽의 배려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교도통신>은 역대 대통령들이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절 행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해 왔지만, 이번처럼 전체 기념사의 70% 정도를 한-일 관계에 할애하면서 무게를 둔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작심한 듯한’ 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가 최근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의 날’ 조례안 상정 등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되고 있는 양쪽의 마찰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일본 쪽에선 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독도 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과 관련해 일본 쪽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문은 또 일제 식민지배에 따른 개인배상 문제를 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 문제가 새로운 외교적 논란을 불러올 것인지에 관심을 나타냈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도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끝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개인배상에 대해 노 대통령이 언급한 사실을 특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노 대통령이 “배상할 것이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배상 대상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연행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주적 판단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노 대통령이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배상이라는 강력한 표현을 쓴 데 대해 “한-일 협정 체결 당시의 미흡한 점을 채워넣을 책임이 일본 쪽에도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법적 제약을 넘어 일본이 자발적으로 전후 보상을 보완해 나가도록 촉구하려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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