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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손석춘칼럼] 노 대통령에 “정말 당부하고 싶은 말”

등록 2006-08-10 20:34수정 2018-05-11 16:33

“진보도 이제 좀 달라져야 합니다. 현실을 봐야 하고 객관적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입니다. 수구언론은 노 대통령이 작심한 듯 진보세력에 쓴 소리를 던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세력, 진보세력에 정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한 말입니다. ‘작심’한 발언입니다.

그는 “적어도 언론 종사자, 진보 지식인은 사실이라는 최고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며 “사실에 충실하지 않으면 가치라는 게 오히려 긍정적 기능을 못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부자신문은 이를 "자신의 우군(友軍)으로 여겼던 일부 방송과 신문이 한미 FTA 체결에 따른 피해를 과대포장하고 있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지적도 틀리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의 다음 발언을 보십시오.

“근데 나도 종속이론 책을 읽었습니다. 변호사 시절 종속이론과 관련한 책을 섭렵했는데 한국사회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폐기해야죠. 언론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참으로 놀라움을 느낍니다. 언론계의 많은 사람들이 ‘종속이론 사고’를 갖고 있다는 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요?

명토박아 둡니다. 언론을 탓하기 전에 대통령부터 ‘사실이라는 최고 가치’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한국 언론계에 많은 사람들이 종속이론 사고를 가지기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닙니다. 지금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쌍수’ 들어 환영하고 있습니다. 방송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몇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만, 세 방송사의 주요뉴스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비판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청와대와 신문권력이 한목소리를 내고, 텔레비전 방송들이 받쳐주고, 더구나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전폭 지지’하고 있음에도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부정적 여론이 더 많은 ‘사실’을 모르쇠할 때가 아닙니다. 더구나 국정홍보처가 수십억 원의 혈세를 사실상 ‘정권 홍보’에 쏟아 붓지 않았습니까?

노 대통령은 농업 개방과 관련해서 더 놀라운 발언을 합니다. “정말 농사 잘 짓는 사람들, 경영인연합회나 기업적 농업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농업 운동 하는 사람들이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노 대통령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으로서 분명히 지적해둡니다. 겸손하기 바랍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흔이 가깝도록 소작해온 농부를 때려죽인 정권의 총책임자가 “정말 농사 잘 짓는 사람들”을 들먹이는 것은 부도덕한 일입니다.

자신이 종속이론과 관련된 책을 섭렵했다는 말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청와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경륜’을 자랑한다는 말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학식이 뛰어나 대통령이 된 게 아닙니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지키지 않은 정책 공약으로 대통령에 선출됐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노 대통령의 문법을 빌려 작심하고 말합니다. “정말 당부하고 싶은 말”입니다. 진보세력이, 더구나 청와대에서 자신을 모셨던 ‘측근’들까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제발 ‘사실’부터 파악하기 바랍니다. 국정홍보처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논리를 ‘외눈박이’로 비판한 게 얼마나 우스개가 되었는지도 찬찬히 톺아보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쓴소리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까닭입니다.

“대통령이 이제 좀 달라져야 한다. 현실을 봐야 하고 객관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020gil@hanmail.net (한겨레 기획위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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