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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그들의 ‘비장한 애국가’는 왜 썰렁했나?

등록 2005-03-03 16:52수정 2005-03-03 16:52

 2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안\'이 가결되자 의장석으로 향하던 배일도 한나라당의원을 열린우리당의원들이 저지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2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안\'이 가결되자 의장석으로 향하던 배일도 한나라당의원을 열린우리당의원들이 저지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분석]‘탄핵’과 닮은꼴인데 무엇이 다른가…비교관전법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류뭉치 여러 개와 각목을 닮은 명패도 날아갔다.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지난 2일 밤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연출된 풍경은 1년 전의 강렬했던 기억을 들쑤신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해 3월12일 같은 곳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가결되는 순간에도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서류뭉치와 구두짝과 명패들이 허공을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다른 것이 더 있기는 하다. 1년 전엔 국회 경위들이 동원됐고, 이번엔 동원되지 않았다. 그 땐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 밖으로 들려나온 뒤 목놓아 애국가를 불렀고, 이번에는 의사당 단상 앞으로 몰려나가서 불렀다. 그리고 정말로 다른 것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애국가를 듣는 시청자이자 유권자들의 반응이었다. 그 땐 우는 사람과 환호하는 사람으로 갈렸다. 그러나 이번엔 대개 쓴웃음을 머금거나 헛웃음을 지었다. 더러는 박장대소를 했다.


경건한 애국가 앞에서 난 왜 웃음이 나올까

애국가의 선율은 경건하고 장엄한 게 특징이다. 때문에 장중한 애국가대신 빠르고 경쾌한 ’새로운 국가’를 제정하자는 일각의 의견이 있을 정도다. 애국심과 결합된 장중한 선율은 때때로 부르고 듣는 한국사람으로 하여금 충만하거나 비장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한국사람이 애국가를 들으며 덧없이 웃거나 자지러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그런데 어떤 애국가는 이제까지의 느낌과 전혀 달랐다.

2일 밤 스무 명 안팎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부른 애국가가 그랬다. 국민을 대표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기관’들의 애국가는 왜 비장함 대신 쓴웃음과 헛웃음을 자아냈을까. 기자는 그것이 궁금했다.

어제 애국가에 대한 느낌의 차이는 기자만의 개인적 취향 탓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다른 매체들의 보도와 한나라당의 논평, 그리고 취재과정에서 접한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손호철 교수 “다수파에 맞서 소수파가 폭력으로 저지하는 모양새는 같다”

겉모습에서 닮은꼴인 대통령 탄핵안 결의과정과 행정도시특별법 통과과정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는 열쇠는 무엇일까. “다수파가 의견을 몰아가고, 소수파가 폭력적인 행동을 통해 저지하는 모양새는 똑같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수의 ‘일방통행’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두 사태의 본질은 같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도 “물론, 탄핵 과정과 행정도시특별법 직권상정의 정당성이나 가치 등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아 결국 물리적 저항을 낳고,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정해구 교수 “형태상으로는 비슷하지만 방향은 정반대”

그러나 내용상으론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라는 평가도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학)는 “형태상으로는 1년 전과 1년 뒤가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방향은 정반대”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탄핵 때는 다수세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깬 것이라면 이번엔 소수세력이 자신의 정파적·정략적 이해를 관철하려고 절차적 민주주의로 확보된 정당성을 부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수세력이 애국가를 불렀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앞에 놓인 처지나 태도는 정반대라는 얘기다.

염창동에서 뺨맞고 여의도에서 삿대질하고 애국가를 부른들…

1년 전이든 뒤든, 양쪽 모두의 애국가에는 온 몸으로 맞서는 ‘항거’의 미학이 서려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정 교수는 이마저도 “뭔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라며 냉소적으로 평가절하했다. 정 교수는 “과거 독재시대에는 정권이 민주적 절차를 안 지켰기 때문에 몸으로 항거한 거지만 지금은 적어도 협상과 다수결 원칙 등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어 그런 식의 항거는 정치문화의 지체와 다름없다”며 “의아한 건 과거에 민주화운동했다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현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염창동(한나라당 당사)에서 뺨맞고 여의도(국회)에서 삿대질 하는 이들이 부르는 애국가가 비장할 리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수진 교수 “소속당의 표결거친 당론두고 행패부린 일 이해안돼”

김수진 이화여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나라당 내 행정도시 반대 의원들은 의회민주주의는 물론 정당민주주의의 기본 자체를 무시하고 도외시하는 행동을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여야가 합의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에서 표결이라는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사안을 두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당을 상대로 행패를 부렸다”며 “이해해 줄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본질이고,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며 “대화와 타협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대통령 탄핵과 나름대로 이런 절차를 밟아나간 행정도시특별법은 비교대상이 되지 못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탄핵과 행정도시특별법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손혁재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교수는 “당론으로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표결의 전제는 결과를 따르겠다는 건데 여야 합의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합의 뒤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물리력으로 상정 자체를 막으려고 한 행위는 더 큰 문제”라며 “전원회의 소집 등 정해진 규정에 따라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 그래도 안 되면 표결에 참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스스로 합리적 판단과 행동할 수 있는 문화는 만들어질까

그러나 탄핵 사태와 행정도시특별법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금의 정치문화를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호철 교수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아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에 맞서 폭력적인 방법을 쓰고, 이런 방식이 나름대로 불가피성을 인정받아온 게 딜레마”라며 “특히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등 불복의 문화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시급한 청산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해구 교수는 “이제 다수결주의 등 절차적 민주성을 존중하고 합의를 수용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이런 과정으로 가는 과도기여서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결정의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손혁재 교수는 “울며 겨자먹기로 무조건 당론을 따르던 행태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는 건 나름대로 의미있는 변화”라며 “한 사람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자율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국회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국회의원들도 시간만 조금 지나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합리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손 교수는 “그들의 합리성을 견인하는 장치는 ‘여론’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금 국민이 그들의 애국가를 들으며 하는 수없이 웃고 있다면 그게 곧 국민의 여론일는지 모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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