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문희상 의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표 2시간 전 일방통보’ 불만에 쌓인 앙금까지
김근태 의장 “끌려가지 않겠다” 대통령과 결별 시사
김근태 의장 “끌려가지 않겠다” 대통령과 결별 시사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회동 제안을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오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한테 전화를 걸어와, 저녁에 당 비상대책위원 전원과 상임고문단이 참석하는 청와대 만찬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20명이 넘게 참석하는 자리에서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즉각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만찬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수십명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정국 상황을 토론하자고 하는데, 제대로 토론이 되겠느냐. 대통령의 연설을 일방통행식으로 듣기만 하는 자리라면 안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의 이런 강경한 태도에는, 청와대가 당과 사전 협의도 하지 않은 채 불쑥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카드’를 꺼내드는 바람에 당의 입지만 좁아졌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지난 25일 당·정·청 4인 회동에서는 정치협상회의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다가, 발표 두 시간 전에야 전화로 당에 통보했다는 게 김 의장 쪽 얘기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의 정치협상회의 구상을 “청와대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정치협상회의 참여 대상에서 제외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제2의 대연정 구상”이라며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도 열린우리당의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켰다. 가뜩이나 불편했던 당·청 관계가 노 대통령의 ‘정치협상회의’ 제안으로 폭발한 것이다.
김근태 의장의 청와대에 대한 쌓인 앙금도 작용한 것 같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거듭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김근태 의장 등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노 대통령과의 결별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의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앞으로 당은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당정 협의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동산 정책 등 주요 국정현안을 둘러싼 여당과 청와대의 갈등이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28일 정부가 철군계획서를 첨부하지 않은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지만, 여당은 ‘철군계획서를 첨부한 동의안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여서 청와대의 동의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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