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드스토리] 법사위원장의 별명은 ‘여우’
한나라당 출신의 최연희(61·강원 동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별명은 ‘여우’다. ‘상황을 잘 피해간다’는 이유 때문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종종 그렇게 불려왔다. 최 위원장은 최근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서도, 줄곧 언론의 비판을 피해왔다. 보안법이나 행정도시법에 따른 국회 파행이 그가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에서 벌어졌는데도, 언론은 좀처럼 그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가 ‘상원’ 노릇을 하는 법사위를 잘 조정하고 이끌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 최 위원장은 지난 2일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등 4명이 행정도시법 처리에 반대하며 법사위 회의장에서 18시간동안 농성을 벌일 때, 언론의 큰 조명을 받았다. 법사위원장인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사실상 그의 손안에 해법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최 위원장의 방을 찾아와, 1시간이상 머물다 간 것만 봐도 그렇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최연희 위원장을 2번이나 찾아와 ‘결단’을 내려주기를 읍소했다. 열린우리당의 주문은 이랬다. 최 위원장이 회의장소를 변경해 여야가 이날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키로 한 행정도시법을 처리해주던가, 아니면 경호권을 발동해 농성중인 의원들을 끌어내달라는 것이었다. 또 그것마저 부담스럽다면 열린우리당 쪽 법사위 간사인 최재천 의원에게 사회권을 넘겨달라는 부탁이었다. 최연희 위원장은 이 셋 가운데 어느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위원장으로서 부담이 가장 덜 할 듯한 회의장 변경에 대해서조차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는 의장의 직권상정을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렇게 됐다. 그가 직권상정을 고려한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의 한 법사위 의원조차 “본회의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법사위에서 처리하게 되면 손에 ‘피’를 묻히게 되니, 본회의에 ‘퉁’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의 ‘뜻대로(?)’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행정도시법은 표결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이후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날치기’로 몰아세웠으며,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점거농성’을 비판했다. 다음날치 신문들도 이 두가지 상호 비판 가운데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거나 균형을 맞추는 톤으로 보도했다. 최 위원장을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던 것이다. “2일 법사위에서 처리하겠으며, 사회를 보기 어려울 땐 최재천 의원에게 사회권을 넘기겠다”고 한 그의 전날 발언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물론, 의원 넷의 법사위회의장 점거농성이란 ‘상황 변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가 18시간동안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무위)’으로 상황을 피해간 그의 전력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보안법 폐지안의 법사위 상정을 줄기차게 요구할 때, 그는 미루고 또 미뤘다. 여야 합의를 내세워, 끝내 두 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당시에도 회의장 밖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꽤나 자유로웠다. 여야가 법사위 회의장에서 치열하게 대치한 것 자체에 가렸기 때문이다. 위원장으로서 최 의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묻는 시각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법사위 회의 때 ‘공정함’을 중시한다고 곧잘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스스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보안법과 행정도시법 처리를 놓고 당에서 열린 긴급 확대간부 대책회의에 종종 참석하는 성의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 두 쟁점법안의 법사위 처리 결과도 ‘공정’을 무색케하기 마찬가지다. 법사위에선 결과적으로(?) 보안법의 상정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요구와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요구가 모두 관철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엔 그도 포함돼 있다. 최 위원장은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법사위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국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법사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안을 마련 중이다. 최 위원장이 그토록(?) 바랐던 공정한 법사위가 어느덧 불신과 대치의 격전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한겨레> 정치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나라당 출신의 최연희(61·강원 동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별명은 ‘여우’다. ‘상황을 잘 피해간다’는 이유 때문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종종 그렇게 불려왔다. 최 위원장은 최근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서도, 줄곧 언론의 비판을 피해왔다. 보안법이나 행정도시법에 따른 국회 파행이 그가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에서 벌어졌는데도, 언론은 좀처럼 그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가 ‘상원’ 노릇을 하는 법사위를 잘 조정하고 이끌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 최 위원장은 지난 2일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등 4명이 행정도시법 처리에 반대하며 법사위 회의장에서 18시간동안 농성을 벌일 때, 언론의 큰 조명을 받았다. 법사위원장인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사실상 그의 손안에 해법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최 위원장의 방을 찾아와, 1시간이상 머물다 간 것만 봐도 그렇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최연희 위원장을 2번이나 찾아와 ‘결단’을 내려주기를 읍소했다. 열린우리당의 주문은 이랬다. 최 위원장이 회의장소를 변경해 여야가 이날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키로 한 행정도시법을 처리해주던가, 아니면 경호권을 발동해 농성중인 의원들을 끌어내달라는 것이었다. 또 그것마저 부담스럽다면 열린우리당 쪽 법사위 간사인 최재천 의원에게 사회권을 넘겨달라는 부탁이었다. 최연희 위원장은 이 셋 가운데 어느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위원장으로서 부담이 가장 덜 할 듯한 회의장 변경에 대해서조차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는 의장의 직권상정을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렇게 됐다. 그가 직권상정을 고려한다고 했을 때 한나라당의 한 법사위 의원조차 “본회의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법사위에서 처리하게 되면 손에 ‘피’를 묻히게 되니, 본회의에 ‘퉁’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의 ‘뜻대로(?)’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행정도시법은 표결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이후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날치기’로 몰아세웠으며,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점거농성’을 비판했다. 다음날치 신문들도 이 두가지 상호 비판 가운데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거나 균형을 맞추는 톤으로 보도했다. 최 위원장을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던 것이다. “2일 법사위에서 처리하겠으며, 사회를 보기 어려울 땐 최재천 의원에게 사회권을 넘기겠다”고 한 그의 전날 발언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물론, 의원 넷의 법사위회의장 점거농성이란 ‘상황 변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가 18시간동안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무위)’으로 상황을 피해간 그의 전력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보안법 폐지안의 법사위 상정을 줄기차게 요구할 때, 그는 미루고 또 미뤘다. 여야 합의를 내세워, 끝내 두 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당시에도 회의장 밖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꽤나 자유로웠다. 여야가 법사위 회의장에서 치열하게 대치한 것 자체에 가렸기 때문이다. 위원장으로서 최 의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묻는 시각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법사위 회의 때 ‘공정함’을 중시한다고 곧잘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스스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보안법과 행정도시법 처리를 놓고 당에서 열린 긴급 확대간부 대책회의에 종종 참석하는 성의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 두 쟁점법안의 법사위 처리 결과도 ‘공정’을 무색케하기 마찬가지다. 법사위에선 결과적으로(?) 보안법의 상정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요구와 행정도시법에 반대하는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요구가 모두 관철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엔 그도 포함돼 있다. 최 위원장은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법사위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국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법사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안을 마련 중이다. 최 위원장이 그토록(?) 바랐던 공정한 법사위가 어느덧 불신과 대치의 격전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한겨레> 정치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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