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국회의원
천정배 /국회의원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에 논쟁이 불붙고 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절대악’으로 등치시켜 신자유주의 절대반대를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지향적 개혁과 개방이 유연한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들을 신자유주의라는 잣대로 단순하게 도식화해서 찬성과 반대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긍정적 측면은 받아들이되, 부정적인 측면을 보완할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10년전 외환위기 당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군사독재정권의 전통에 의해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관치금융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에는 작은 정부가 진보적 개혁이 될 수 있었다.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우리나라에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 세계화는 외국자본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권리의 강화를 요구한다. 이로 인해 세계화는 재벌지배구조의 개혁을 촉진하는 긍정적 면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정경유착에 기인했다. 정경유착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정치권력과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자본권력의 결합에 의한 구조적 비리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두 권력의 일부를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시장에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순간 외국자본은 개혁세력의 원군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갖는 긍정적인 모습에 힘입어 신자유주의는 순식간에 우리나라를 흔들어 놓았다. 진보개혁진영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어쩔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니 이를 받아들이고 개혁에 이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되 신자유주의가 가져올 폐해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경우는 신자유주의적 요구인 고용의 유연성을 받아들였지만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그 폐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용의 유연성 확대에 맞추어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지 못했고, 나를 포함한 열린우리당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또한, 절반 이상의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때 까지 비정규직을 보호할만한 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작년 말 뒤늦게 비정규직보호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법안만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시장만능주의가 가져올 문제의 심각성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정책이었다. 우리는 시장원리에 반한다는 보수세력의 비판에 부딪혀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집값은 폭등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헌법 제122조는 토지공개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헌법 제35조 제3항은 주거복지의 취지를 담고 있다.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국가가 강력한 부동산정책을 편 외국의 사례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뒤늦게 헌법정신과 외국의 사례를 깨닫고, 최근에야 1.11 조치로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도입하였지만, 너무도 때늦은 감이 있다. 이자제한법의 경우에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일부 관료와 정치인의 주장을 이겨내지 못하여 입법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 사이 연금리 20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로 서민의 삶은 멍들고 있다.
세계화시대는 능동적 개방을 요구한다. 이러한 점에서 FTA체결에 대하여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FTA는 상품교역에 한정되는 낮은 수준의 FTA가 아니라 각종 규제완화와 제도개선, 법개정까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FTA이므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한에 쫓겨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 신자유주의 절대 반대를 외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대신하여 민생을 안정시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계속 어려워졌고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은 개발독재와 교조적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현혹되고 있다. 국민소득 수백달러 시대에서나 통할 토건국가 정책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시킬 성장전략으로 둔갑하여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심각한 위기이다.
나를 포함한 개혁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현 상황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으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사람 중심의 성장전략’이 양극화를 해소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이를 현실화시킬 정책과 비전은 국민과 함께 마련하는 것이 옳다. 민생개혁세력이 이에 적극 동참하여 국민과 함께 중산층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을 생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정배
나를 포함한 개혁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현 상황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으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사람 중심의 성장전략’이 양극화를 해소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이를 현실화시킬 정책과 비전은 국민과 함께 마련하는 것이 옳다. 민생개혁세력이 이에 적극 동참하여 국민과 함께 중산층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을 생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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