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와 언론보도의 영향력
김형준 명지대 교수 ‘대선 여론조사 문제점’ 조목조목 비판
# 상황1(흥미 위주 끼워넣기) 지난 1월 중순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한 신문은 곧바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여권 후보 적합도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당시 한나라당 소속)가 18.8%로, 정동영(14.0%)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예시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한 달 뒤 다른 조사기관에선 ‘여권 후보 적합도’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그 결과 정동영 7.1%, 김근태 3.9%, 손학규 1.9%로 나타났다. # 상황2(여과없는 보도) 한 방송사가 19일 발표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오늘이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물음에 34.1%가 이명박 전 시장, 22.1%가 박근혜 전 대표라고 답했다. 언론들은 같은 조사기관의 4월4일 결과와 비교해, ‘이 전 시장 지지율이 13.7%포인트나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전 조사에선 “누가 대통령에 적합하냐”로 물어, 19일 조사와 질문 내용이 달랐다. # 상황3(꿰맞추기식 해석) 한 방송사는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를 토대로 “4월9~13일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 지지도가 지난주 대비 6.4%포인트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로 △김유찬씨의 <이명박 리포트> 출판기념회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박 전 대표 캠프 합류 등을 들었다. 그런데 1주일 뒤인 19일 조사에선 이 전 시장 지지율이 다시 4.2%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1주일 만에 ‘급락’했던 지지율이 어떻게 다시 상승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언론사들의 ‘대선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형준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23일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로 열린 ‘대선 관련 여론조사 방법론과 언론보도의 공정성’ 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현행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밴드왜건 효과’(우세자 편승)와 ‘침묵의 나선 효과’(소수 의견일 경우 침묵하는 경향)를 들며, 여론조사는 앞선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책과 공약을 무시한 채, 단지 ‘누가 몇 % 앞섰느냐’는 흥미 위주의 경마식 보도는 그 결과가 다시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쳐 여론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여러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를 뒤섞어 지지율 추이를 분석하는 ‘비빔밥식 보도’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여론조사처럼 정보가 전달되기도 전에 덮어놓고 실시하는 ‘당일치기 번개 보도’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 교수는 또 특정 여론조사 기관이 후보 캠프와 언론사 여론조사를 함께 할 경우 이 기관의 여론조사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불문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밴드왜건 효과가 실재하는지에 대해선 반대론도 있다. 한국갤럽의 박무익 소장은 선두 주자가 유리하다는 ‘밴드왜건 효과’에 대해 “미국 선거 조사자료를 보면, 두 후보의 지지율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격차가 줄어든다. 최근 13차례의 미국 대선에서 12차례가 그런 결과를 보였다. 한국 대선에서도 1992, 1997, 2002년 세 차례 모두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줄어들었다”며 밴드왜건 효과는 없다고 말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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