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모금 등 폭넓게 인정…선거 도움안돼 ‘후보 품평’ 자제
미국은 1787년 대통령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 엄격한 견제와 균형 속에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헌법의 원칙을 대통령에게 지우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그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게 관례다.
미국 연방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해치법’(Hatch Act)은 연방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할 목적 또는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자기의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예외이다. 이 때문에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정당의 당수 격인 미국 대통령은 의회 선거운동 기간중 자기 당 후보의 정치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하거나 적극적인 지원 유세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은 공무와 선거운동의 경계가 모호한 점을 이용해 선거철이면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전국을 누빈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 운동기간 동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선거 지원유세에서 “민주당은 숨 쉬는 모든 것에 세금을 매길 것이며 숨을 쉬지 않으면 그 자식에게 세금을 거둘 것”이라고 민주당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 지원유세에 나섰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화당은 무엇 하나 잘해낼 수 없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현직 대통령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까지도 직접 선거운동 과정에 개입해 정치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의 한계는 불문율처럼 지켜진다. 대통령이 선거판에 뛰어들어 상대당 정책을 비판하고 소속 정당의 지지를 호소하긴 하지만, 직접 나서서 상대당 후보를 비난하거나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하는 일은 없다.
연임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차기 선거에 나설 수 없는 2008년 미국의 대선 정국은 단임제인 한국의 현 대선 국면과 비슷하다. 최근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의 전직 선거 참모들이 대거 ‘제2의 레이건’을 꿈꾸는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쪽에 집결해 부시 대통령의 지지가 그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한 차례도 톰슨에 대한 지지를 밝힌 적이 없다. 자신이 추진하는 이라크 병력 증파안과 이민개혁법안을 지지하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없다. 거친 말을 해대기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이지만, 이라크전 수행과 관련해 신랄한 비난을 쏟아내는 민주당 후보들을 겨냥해 공개적으로 품평하거나 비난을 한 적도 없다. 법적으론 허용이 되지만, 그런 발언을 할 경우 여론의 비판과 함께 실제 선거전에서 공화당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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