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오른쪽)이 21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건설교통위원회에서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춘희 차관과 답변을 논의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일 오전 37쪽 보고서 ‘원본’ 확인하고도 ‘모르쇠’
건설교통부의 수자원정책팀이 지난 20일 오전에 37쪽짜리 ‘경부운하 재검토 결과보고’ 문서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20일 오전 37쪽짜리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건교부 간부들도 이날 밤까지 “이 보고서의 출처를 알 수 없다”고 발뺌했다. 사건 초기부터 건교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왜 수공 문서임을 밝히지 않았을까?=21일 한국수자원공사 최홍규 조사기획처장은 “18일 국회에서 37쪽짜리 보고서가 공개된 뒤 19일 건교부에서 이 보고서가 있는지 물어왔으며, 19일 오후 늦게 이 보고서를 구성한 3~4개 문서들이 수공의 경부운하 재검토 태스크포스에 있음을 확인해 20일 오전 건교부에 언론 공개본과 원본의 비교표를 만들어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교부 수자원정책팀은 이날 오전 이런 사실을 공개하거나 수공에 원본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건교부의 이명노 감사관은 “20일 오후 3시께 수자원정책팀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수공에서 보낸 두 가지 보고서의 비교표를 확인했으며, 수공에 원본 보고서를 요청해 오후 6시30분께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해성 기반시설본부장은 “20일 오후 늦게서야 37쪽 보고서가 수공에서 작성된 문서임을 알았으며, 이날 오전이나 낮엔 37쪽 보고서가 수공에 있는 것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수공의 비교표를 받은 홍형표 수자원정책팀장은 “수사중이라 말할 수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한편 이용섭 장관은 이날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언론에 공개된 37쪽 보고서는 5월10일 5차 경부운하 재검토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담고 있어 태스크포스 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5월2~3일 작성해 5월9일 청와대에 보고한 9쪽짜리 ‘중간보고’보다 업데이트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37쪽짜리 공개된 보고서와 수공 보고서는 같은가?=수공 최홍규 처장은 “조사기획팀의 태스크포스 팀원 2명이 갖고 있던 자료 가운데 37쪽으로 된 하나의 문서는 없었다”며 “여러 자료 가운데 3~4개의 문서를 조합해보니 언론에 공개된 37쪽짜리 문서와 같은 문서가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조합한 뒤에도 세 가지 정도 다른 점이 있었다고 최 처장은 밝혔다. 표지의 작성 주체가 공개본은 ‘TF’였으나 원본은 ‘수자원기획관실’이었고, 2쪽의 ‘검토 결과’와 8쪽의 ‘결론’도 원본은 좀더 길고 자세하게 돼 있었으나, 공개본은 단 한줄로 간단하게 돼 있었다는 것이다.
■건교부와 이용섭 장관의 부적절한 대응=결국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37쪽짜리 보고서는 수공에서 작성된 문서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건교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문서 내용보다는 그것이 작성·유출된 과정에 관심이 집중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건교부는 지난 4일 <이코노미스트>에 37쪽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가 나왔을 때부터 대응에 실패했다. 청와대에 5월9일 보고한 9쪽짜리 보고서의 내용이 유출된 것을 알고도 자체 감찰을 벌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감찰에 착수했더라면 곧바로 수공 문서임을 확인하고, 유출자도 수사 의뢰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건교부 장관이 18일 37쪽 보고서에 대해 “건교부와 수자원공사, 청와대에서 만든 게 아니며 누군가 의도를 갖고 만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사실과 달랐고, 위·변조 등 의혹을 증폭시켰다. 실제 두 문서를 비교해보면 9쪽짜리 문서와 37쪽짜리 문서 앞부분은 사실상 글자체까지 같은데도, 몇 가지 다른 수치를 들어 정부의 문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보고서를 수공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이 장관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김규원 이유주현 기자 che@hani.co.kr
또 건교부 장관이 18일 37쪽 보고서에 대해 “건교부와 수자원공사, 청와대에서 만든 게 아니며 누군가 의도를 갖고 만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사실과 달랐고, 위·변조 등 의혹을 증폭시켰다. 실제 두 문서를 비교해보면 9쪽짜리 문서와 37쪽짜리 문서 앞부분은 사실상 글자체까지 같은데도, 몇 가지 다른 수치를 들어 정부의 문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보고서를 수공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이 장관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김규원 이유주현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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