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정상회담 이후 성과와 한계
2000년 6월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7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변곡점을 기다려왔다. 경협 분야는 높은 성과를 냈지만, 정치·군사 분야는 높은 벽 앞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1차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7년을 버텨왔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남북 관계가 새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속도를 내는 북핵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 가는 남북관계에 대한 일종의 위기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제1차 정상회담의 실행기구라고 할 수 있는 남북 장관급 회담은 지난 5월 말 서울 회담까지 21차례나 열리며, 남북관계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장관급 회담과 하위 회담을 통한 합의로, 개성공단이 1단계 100만평에 대한 분양을 마쳤다. 5월18일에는 열차 시험운행도 치렀다. 현재 경공업-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당국 차원의 남북 경협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를 비롯해, 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의제를 만들어내고 합의한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신뢰는 여전히 불안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은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북한은 장관급회담 때마다 ‘정치적 장벽’으로 혁명열사릉 등에 대한 남쪽 방문객 참관 제한 해제, ‘제도적 장벽’으로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을 거론해 왔다. 남쪽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촉구했다. 장관급 회담 수준으로는 합의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양쪽은 ‘얼버무린’ 상태로 합의문을 발표하곤 했다.
일부에서는 남북의 군비 경쟁이 오히려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한의 국방비 대폭 증액과 북한의 핵실험을 근거로 한 것이다. 경제·문화 중심의 남북관계를 핵문제와 군축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평화의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정상회담 당위론이 끊임없이 나왔다.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남북 대화채널이 한계를 보인 점도 남북관계의 격상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수준과 대화 채널을 한 단계 높인 뒤, 이를 지렛대 삼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최고당국자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북한체제의 특성을 볼 때, 실무회담을 백번 하는 것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번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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