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고 청렴한 고위공직자는 없는가? 70년대 개발시대를 지나온 50대 60대는 모조리 <브레인 서바이벌>의 ‘낙엽줄’ 신세인가?
이헌재, 최영도, 강동석…고위공직자들이 투기의혹에 휩싸여 줄줄이 낙마했다. 이헌재 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은 공소시효가 한참 지난 20여년전의 일로,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친구와 처제가 사놓은 땅으로 ‘낙엽’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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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도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이 지난 18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최근 위장전입의혹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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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가혹하다”는 동정이 나왔다. “당시 그만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 치고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모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냐”라거나 “옛날 일을 들쑤셔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헌재 부총리의 사표를 앞에 놓고 “26년 전 민간인 신분 때의 일이고, 본인이 아닌 부인의 문제였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기야 청와대 김완기 인사수석은 “50~60대를 (고위직으로) 기용하려면 많은 분이 흠이 있어서라기보다 홀랑 벗고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인격적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임용을 거절하고 있다”며 “너무 이런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화가 진전되면 청렴, 투명사회는 앞당길 수 있으나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 인사수석이 인재를 간택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고위공직자들의 잇따른 낙마가 이헌재, 최영도, 강동석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사는 50~60대와 그들이 살았던 70~80년대라는 시대를 한 묶음의 문제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시대의 열쇳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복부인, 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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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말부터 80년대 초반 강남개발과 부동산 붐의 상징이었던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일대의 항공사진 모습. 탁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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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복부인, 졸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까지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부동산 투자는 고위 공직자나 서민들에게 재산을 증식하는 ‘일반적 수단’이었다. 이헌재 전 부총리, 최영도 전 인권위원장 등이 문제가 된 부동산을 산 시점과 일치한다.
중동특수로 오일달러가 국내로 밀려들면서 통화량은 팽창했고 시중에 떠돌던 여유자금은 부동산 투자로 대거 몰렸다. 여기에 강남개발과 아파트 건설 붐은 부동산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부동산 투자열기는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경제가 3저호황(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을 누릴 때까지 이어졌다.
부동산 전문업체인 RE멤버스의 고종완 사장은 “보통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붐이 조성되는데 70년대말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대대적 경제개발과 호황기가 겹치면서 부동산 경기가 매우 활발했다”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복부인, 졸부 등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열쇳말이었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대다수 봉급생활자의 아내들은 이리저리 쥐어짜서 마련한 종자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재테크에 나섰다. 집 안에서 남편의 수입만 의지한 채,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자산을 불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아내들은 ‘무능하고 게으른’ 여자 취급을 당하던 세태였다. 남편들도 아내가 부동산 재테크로 뭉칫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주부의 당연한 업무’로 인식한 시대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카드회사의 광고가 2000년대 신용카드 소비사회의 상징이라면, 70~80년대 ‘부동산 재테크’는 가정을 위해 험한 과욋일을 마다지 않고 경제현장으로 나선 ‘억척 주부’들의 능력의 상징이었다.
모두가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벌었을까?
그러나 그 시대에 부동산 투자를 ‘사회적 분위기 탓’으로 돌리더라도 그 세대가 모두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벌어들인 것은 아니다.
고 사장은 “서민들도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나 상대적으로 정보가 빠른 공무원이나 정치권, 자금력이 있는 부자들이 덩치 큰 부동산은 휩쓸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또, 고 사장은 “사회적 분위기가 부동산 투자에 관대했다하더라도 고위층들이 위장전입이나 다른 사람 명의로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지위를 이용해 투자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재산을 증식했다면 법적인 처벌과 도덕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참여연대 이재근 투명사회팀 간사도 “그 시절에도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사람은 소수였고 서민들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은 드물었다”며 “서민들은 오히려 투기로 오른 집값 때문에 오늘날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들이 위장전입 등 편법과 지위를 동원해 20여년전 부동산 투기를 한 범죄행위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편법으로 불려온 재산은 서민들의 집값 고통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부와 명예 동시에 갖지 못하게 하겠다” 폭탄선언
박양실 허재영 김상철 김재순 김문기 유학성 박준규 ‘재산공개 쓰나미’
공직자 재산공개 13년째, 여전히 ‘학습’이 필요한가?
△ 지난 1993년 2월26일, 김영삼 대통령이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선서를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일성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지 못하게 하겠다"며 부패와 전쟁을 선포했다.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제도가 시행된 것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13년째를 맞고 있다. 4급 이상 공직자는 모두 재산을 등록하며, 이 가운데 1급 이상은 재산을 공개한다. 공직자들의 재산을 등록하도록 한 것은 이보다 앞서 부동산 투자붐이 한창이던 1981년부터다.
김영삼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문민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첫 순가락에 꼽았다. 김영삼정부는 취임초인 1993년 3월 윗물맑기운동 차원에서 차장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추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산공개를 추진하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는 격렬했으나 서민들이 대다수인 국민들은 공직자 재산공개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처음 실시된 재산공개의 파문은 컸다. 지위와 편법을 이용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누렸던 숱한 고위직이 ‘가을바람에 낙엽’ 신세로 추락했다. 박양실 보건사회부장관, 허재영 건설부장관, 김상철 서울시장 등이 재산공개결과 부정축재 의혹을 받고 공직을 떠났다. 집권당인 민자당 의원들 가운데에서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 김문기·유학성씨 등이 의원직을 내놨고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도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가져온 ‘쓰나미’였다.
김대중정부에서도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요구는 매한가지였다. 실세 총리였던 김종필씨에 이어 총리에 부임한 박태준씨가 명의신탁한 건물을 재산신고에서 누락시켜 4개월 만에 중도하차한 것이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부정부패하면 고위공직자에 오르지 못한다’는 학습효과는 공직사회에 널리 퍼졌다. 고위공직자들이 70~80년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동산 투자를 한 것에 대해 ‘과거는 과거대로 묻어두자’는 말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 공직자 재산공개가 시작된지 13년이 지났다. 스스로 소명하고 바로잡을 기회도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고위층들은 여전히 부동산 재테크로 수월하게 돈을 번다
‘존경받지 못한 부자들’이 여론을 들끓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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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7일 건설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 함께한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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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정부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했고 달라진 도덕기준과 제도로 실제로 수많은 공직자가 낙마했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들은 고위공직자들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지 못한다”라고 여기고 있을까? 각종 지표로 드러나는 통계적 자료는 ‘부와 명예’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가 지난 2월24일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현황을 보면 재산증가액 10위권 이내에서 7명이, 20위권 이내에서 12명이 토지나 아파트 매도금의 공시지가와 기준시가의 차익에 따라 재산이 늘어났다고 신고했다.
2월28일 공개된 법원과 헌법재판소 고위법관의 재산변동 내용을 보더라도 1억원 이상 재산이 증가한 법관 가운데 13명은 부동산을 상속받거나 아파트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차익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 사이에서 “고위층들은 여전히 수월하게 돈을 번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교정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멤버스의 고종완 사장은 “70~80년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이해하더라도 사회가 건전해지고 공직기강이 강화된 90년대 이후에도 공직자들이 부동산으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도덕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말대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일이 사라졌다면 지금처럼 국민들의 부와 부자에 대한 인식이 싸늘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 사장은 “가진 사람들, 사회 고위층들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편법과 불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다보니 서민들은 부자들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고위직들이 사퇴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여론이 들끓은 것은 존경할 수 없는 부자들과 지도층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도 오랜 세월 동안 변화되지 않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경박함을 국민들이 분노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김 교수는 “교육부 장관 아들이 조기유학을 간다거나 건교부장관 처제가 부동산 투기를 한다면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나라 지도층은 돈과 명예를 독식하려 한다. 품위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성정체성, 낙태, 이성문제 등이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돈 문제, 투기문제가 전부다”며 “우리 사회가 도덕성이 높아서가 아니고(돈 문제, 투기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공직자 도덕윤리를 바라보는 이중잣대도 원인
그러나,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행정학부)는 공직자의 도덕적 윤리에 대한 국민들의 ‘이중잣대’를 들끓는 여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 교수는 “우리사회는 사적인 가치관과 공적인 가치관 사이에 괴리가 크다”며 “사적인 것에는 여전히 과거에 대해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공적인 영역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이런 가치체계의 이중구조는 시민과 공직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 이중성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해도 이런 가치관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되는 한계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덕성 학습효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거름을 먹고 싹을 틔운다
[사진설명]생전의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장.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였던 그는 공직에 오르자 마자 두 아들을 불러 주식투자 내역을 상세히 캐묻고, 자신이 한은 총재를 물러날 때까지 일체 주식을 사고 팔지 말 것을 명령하는 등 엄격한 몸가짐으로 공직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실무능력과 도덕성도 겸비한 흠결없는 고위공직자들은 찾을 수 없을까? 우리 공직사회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를 꼽는다.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였던 전 전 총재는 공직에 오르자 마자 두 아들을 불러 주식투자 내역을 상세히 캐묻고, 자신이 한은 총재를 물러날 때까지 일체 주식을 사고 팔지 말 것을 명령했다. 2001년에는 한은 임원진의 급여 재조정 때는 총재 연봉만 제자리에 묶어둬, 후임자인 박승 현 총재가 한때 ‘박봉’에 시달리도록 했다.
전 전 총재의 사례가 자주 회자되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공직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함께 누려서는 안된다는 자세의 고위 공직자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직사회에서는 잇따른 고위 공직자들의 낙마가 공직자들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공무원들이 “고위 공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젊은 국과장 및 사무관들에게는 행동을 조심하게 만드는 학습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거나 “나중에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관리를 잘해야 된다는 풍조가 정착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그렇다.
학계나 시민사회도 이같은 진통을 한번은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최근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커지면서 과거의 관행과 현재의 기준 사이에 괴리가 커 그물망에 다 걸리는 것”이라며 “이것은 우리 사회가 보다 투명하고, 공직윤리가 확립되고, 지도층의 윤리의식 부족을 일깨우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지도층에게 더큰 의무와 도덕성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척박한 땅에서 싹틔우지 못한다. 비옥한 거름 위에서 비로서 뿌리를 내린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겠다는 공직자들의 ‘지난 시절 일탈’은 우리 사회가 꽃피워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거름으로 아낌없이 바쳐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