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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추적 합치면 개인움직임 ‘손금보듯’
통신자료 제공 지난해만 27만건
수사기관 반발속 우리당 “발상전환 필요” 수사기관이 누구의 통화내역이든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돼 있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 이번 임시국회 회기 안에 고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열린우리당이 어느 때보다 개정안 처리에 적극적이고, 한나라당도 한몫 단단히 거들 분위기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돼 있는 5개의 통비법 개정안의 내용도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수사기관이 통신회사에 통화내역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반드시 법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는 등 ‘법원 허가제’의 도입을 뼈대로 하고 있다. 대법원도 전면적인 영장주의보다는 허가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법사위 관계자는 8일 “관할 법원의 사전허가를 얻도록 하는 정도로도 실효성 있는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법 개정을 서두르는 까닭은 통화내역 조회가 남용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 1998년 검찰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이른바 총풍사건) 수사 때부터 본격 도입된 통화내역 조회는 해가 갈수록 급증해, 2000년에는 각종 수사기관의 요청 건수가 8만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무려 17만건에 이르렀다. 조회 내용도 단순히 누가 누구와 언제 통화했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인터넷 접속 기록과 접속지 자료(아이피 주소),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지피에스) 자료 등은 물론, 각종 통신 이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통신자료까지 수사기관의 요청서 한 장이면 모두 제공된다. 국가정보원과 같은 정보수사기관은 검·경찰과 달리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 없이도 통신회사들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실제 정보통신부가 법사위에 제출한 통계를 보면, 각종 자료의 요청 건수는 뚜렷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이 수사기관에 통화내역 자료를 제공한 전화번호 수는 2004년 한해에만 72만8161건이나 돼, 2003년의 50만8677건에 견줘 43.1%나 늘어났다. 또 가입자의 인적사항을 담은 통신자료 제공 건수는 지난해 한해 동안 27만9929건을 기록했다. 2003년(18만9192건)보다 48.0%나 증가한 수치다. 이동전화 위치추적 자료도 지난해 하반기에만 2만2592건이 제공됐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화내역에다 위치추적 자료까지 더하게 되면, 특정인이 하루에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거의 완벽하게 ‘동선’이 파악된다”며 “그런 점에서 ‘빅 브러더’가 따로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 자료를 손쉽게 얻어 수사나 정보수집 등에 활용해온 해당 기관들은 법원 허가제를 담은 통비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법사위에 보냈다. 검찰은 “뇌물사건의 70% 정도를 통화내역 자료를 활용해 해결하고 있기 때문에 허가제가 도입되면 수사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고 이유를 댔고, 최근 분당 항공사 여승무원 납치·살해사건 수사 등에서 ‘효험’을 본 경찰은 통화내역 자료는 물론 위치추적 자료의 허가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국가정보원은 “산업 스파이를 잡는 데는 장기추적이 중요한 만큼, 통화내역 조회가 필수적”이라는 반대논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수사기관의 반발에 대해 “예상했던 반응”이라며, 개정안 처리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다. 법사위의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과거에 계좌추적 영장 1장을 받아서 수십, 수백개의 계좌를 맘대로 열어보다가, 계좌 1개에 영장 하나씩을 청구하도록 바꿀 때에도 수사기관은 반발했었다”며 “이제는 수사의 편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범죄자도 잡아낼 수 있는 과학수사 기법을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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