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 변호사 진술 내용
이용철(47) 변호사가 19일 직접 작성해 ‘삼성 이건희 불법규명 국민운동’ 쪽에 보낸 진술내용에는 삼성 쪽으로부터 명절 선물로 현금 다발을 받은 과정과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이 변호사의 진술내용을 보면, 이 변호사는 2003년 9월1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에 임명됐고, 같은해 12월20일 청와대 조직 개편으로 민정2비서관과 통합된 법무비서관에 임명됐다. 2003년 말이나 다음해 초께 삼성전자 법무팀 소속 이경훈 변호사로부터 ‘보직 이동 관련 뉴스들을 보고 생각이 났다’며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와 얼마 뒤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두 사람은 1996~98년 서울 도봉구 창동 삼성아파트 주민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소음·진동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상대 변호사로 오랫동안 소송을 진행하면서 친분이 생겼다. 점심 자리에서 이경훈 변호사가 명절에 회사에서 자기 명의로 선물을 보내도 괜찮겠는지를 물어, 이 변호사는 “한과나 민속주 따위의 의례적인 명절 선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승낙했다.
1월16일께 이 변호사는 휴직 중이던 법무법인 직원한테서 ‘명절 선물이 법인사무소로 배달됐다’는 연락을 받고, ‘바쁠 것 없으니 명절이 지나고 가져다 달라’고 했다. 1월21~23일 설 연휴가 지난 1월26일 법무법인에서 집으로 온 선물을 뜯어보니 책으로 위장된 현금 다발이었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 중이었고, ‘차떼기’가 밝혀져 온 나라가 분노하던 때에 차떼기 당사자 중 하나인 삼성이, 그것도 청와대에서 반부패 제도개혁을 담당하는 비서관한테 버젓이 뇌물을 주려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다. 함께 선물을 뜯어본 부인에게 “삼성이 간이 부은 모양”이라고 말하고, 이 사실을 폭로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민감한 시기에도 자신 있게 떡값을 돌릴 수 있는 거대 조직의 위력 앞에 사건의 일각에 불과한 뇌물 꼬리를 밝혀봐야, 중간전달자인 이경훈 변호사만 쳐내버리는 꼬리 자르기로 끝날 것이 자명할 것으로 판단해 뒷날을 대비해 증거로 사진을 찍어두고 이경훈 변호사에게 되돌려주고 끝내기로 작정했다. 1월 말께 이경훈 변호사를 만나자고 해 점심을 함께 하면서 ‘매우 불쾌했지만 당신의 체면을 봐 반환하는 것으로 끝낼까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보며 당시의 일이 매우 조직적으로 자행된 일이며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이 매우 신빙성 있다고 판단돼, 적절한 시기에 내 경우의 경위와 증거를 밝힐 것을 고민했다”며 이를 공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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