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환 구조’ 논리근거는 불투명
‘핵폐기’ 전제조건 여전…한·미 ‘한목소리’ 낼듯
‘핵폐기’ 전제조건 여전…한·미 ‘한목소리’ 낼듯
이명박 당선인의 새해 회견은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를 담으려고 고심한 흔적이 짙다.
우선 한-미 관계 강화가 남북관계 발전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당선인은 “한-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남북관계를 더 좋게 만들 것이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미 관계도 좋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인수위 자문위원은 “한-미 관계 강화를 대북 봉쇄나 압박 차원에서의 공조와 곧장 동일시하는 극우와의 차이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표현에도 신경을 썼다. 한나라당 쪽이 주로 ‘미-북 관계’라고 해온 것과 달리, ‘북-미 관계’라고 불렀다. 정상회담 합의와 관련해서도 “사업의 타당성, 재정부담, 국민적 합의 등 관점에서”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이행하겠다”고 명시했다. “남북 정상이 북핵 포기에 도움이 된다거나 남북에 다 도움 되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한 것도 전향적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이행과 정상 간 수시 만남 등은 지난해 정상회담 합의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며 반겼다.
그러나 이날 발언에 담긴 구상이 여전히 설익었거나 모호하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이 당선인이 강조한 한-미 관계 → 남북관계 → 북-미 관계의 선순환 구조가 어떤 논리적 연쇄를 갖는지, 한-미 관계 강화가 어떻게 남북관계 강화로 이어질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있다. “6자 회담에서 합의된 것을 성실히 행동으로 지켜 나간다면 본격적인 남북 협력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언급이다. 6자 회담 합의는 궁극적으로 비핵화이고, 현 단계에선 불능화와 신고다.
한-미 관계 강화를 강조한 것은 이런 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 쪽과 같은 목소리를 낼 것임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미 관계가 삐걱거린 것이 주로 한국이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나라당과 이 당선인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북 협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북한의 성실한 합의 이행이 이뤄져야 한다. 한-미 관계 강화는 조건이 달리지 않은 출발점인 반면, 남북관계 강화는 조건이 충족돼야 다다를 수 있는 도달점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한-미 동맹 강화와 북핵 폐기 먼저라는 기존 방침에 실용적으로 남북관계를 봉합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관계와 남북관계의 병행을 기조로 삼은 것과는 여전히 판이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선후관계로 접근할 경우 북핵 문제에 일방적으로 남북관계가 좌우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핵문제가 잘 풀려 대북관계 개선에 한-미 사이 이견이 없다면 선순환이 가능하겠지만, 지금 같은 교착국면에서 한-미 공조만 강조하면 한국의 조정 역할이 약해지면서 남북관계도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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