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식 정부’ 뜯어보니…
청와대 힘세진데다 특임장관 보좌도 강화
비서실은 구조본, 각부처는 계열사와 흡사
기획재정부·금융위 등 ‘관치경제’ 우려높아
청와대 힘세진데다 특임장관 보좌도 강화
비서실은 구조본, 각부처는 계열사와 흡사
기획재정부·금융위 등 ‘관치경제’ 우려높아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표방한다.
‘작은 정부’란 국가의 통제와 규제를 줄이고, 시장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작은 정부’는 1970년대까지 지배적이던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 비효율 논란에 빠지면서, 80년대 영국(대처 정부)과 미국(레이건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전통적으로 ‘큰 정부’였던 독일 프랑스 일본 싱가포르 등도 합류하면서 전세계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맨 먼저 부처 통폐합에 나선 것도 ‘작은 정부’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18부 4처’가 ‘13부 2처’로 줄어 부처 수로는 1960년 이후 가장 규모가 작은 정부가 됐다. 앞으로도 ‘작은 정부’의 특징인 규제 완화,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민간 이양 등이 본격화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작지만 강한 정부’란 구호에서 나타나듯, 한편으론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책조정 기능을 총리실에서 청와대로 옮겨, 청와대가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다. 총리실 기능은 이전의 ‘분권형 총리제’와 달리, 대통령 보좌 역할로 축소시켰다. 또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를 담당하는 특임장관 두 명을 총리실 산하에 따로 둬, 모든 권한이 청와대로 집중되고 청와대에서 국정의 힘이 부채살처럼 뻗어나가는 형태다. 마치 청와대 대통령실은 총수의 명을 받드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각 부처는 구조본 영향 아래 제한적인 독립성을 지닌 계열사가 된 듯한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도 권한 행사와 행태에선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흡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조직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이 당선인의 카리스마형 기업가적 행태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인수위는 부처를 통폐합하면서 교육부 기능은 대거 민간·지방으로 옮겼지만, 경제부처의 권한은 손대지 않았다. 오히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합쳐진 기획재정부는 세출·세입 기능을 다 거머쥐어 전부처를 장악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었다. 재경부의 금융정책과 금감위의 금융감독을 통합한 ‘금융위원회’에 대해서도 관치금융 부활을 우려하는 시각들이 많다.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가 통합된 국토해양부 신설도 대운하 등 정부의 대규모 토목사업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이런 외형적인 정부조직뿐 아니라, 행태에서도 ‘관치’의 모습이 곳곳에 나타난다. 통신비 인하 추진과정에서 보듯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전경련 모임에서 기업 회장들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해도 좋다”고 하거나 ‘전봇대 발언’ 한마디에 문제의 전봇대가 곧바로 옮겨지는 데서 ‘효율성’과 ‘성과’를 위해 정상적인 행정 절차를 건너뛰는 듯한 모양새가 엿보인다. 소순창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개발 관련 부처가 강화되는 등 과거회귀적 모습이 보인다”며 “모든 것을 청와대에서 조정하겠다는 건 신중앙집권 시스템으로, 청와대 조직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만수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이명박 정부는, 정부가 해야할 일은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안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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