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세제신설 금지 등 조세법률주의 위반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조항들이 들어 있다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검토 보고서에서 밝혔다. 또 이 협정에 따라 한국만 져야 하는 의무규정이 미국 쪽 의무규정보다 8배나 많아, 지금까지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 중 불균형이 가장 심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회 통외통위는 18일 내놓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검토보고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자동차 세제 관련 조항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의 조세 법률주의에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자동차 특별소비세율의 누진제를 폐지해 단일화하는 한편,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율을 기존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면서 앞으로는 배기량 기준 세제 신설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외통위 보고서는 “헌법상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양쪽 정부간에 맺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세율의 상한을 정하고 특정 세제의 신설까지 금지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자동차 세제 개편은 미국산 자동차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일본과 독일산 차에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피해가 커질 개연성도 부정하기 어렵다”며 “법리적 측면이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협정에서 ‘자유화 후퇴 방지 메커니즘’(역진 방지 조항)을 도입한 것도 위헌적 요소로 꼽혔다. 이 조항은 협정에 따라 푼 규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국회 입법권 제약은 물론 국가 정책의 자율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조처라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또 통외통위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자료를 분석해, 한-미 협정에서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의무화하는 규정이 미국 쪽에는 7가지인 데 반해 한국은 무려 55가지인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맺은 열네 개 자유무역협정 가운데 협정 상대국에 일방의 의무부담을 가장 많이 지운 사례라고 보고서는 말했다. 아울러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양국이 개정해야 할 법률 수도 한국은 24가지인 반면, 미국은 6가지에 불과해 4 대 1의 비율을 보였다.
통외통위 보고서는 “정부는 협상 개시 직전은 물론 과정에서도 대국민 설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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