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
기업인들 “현실적으로 몇이나 걸까”
기업인들 “현실적으로 몇이나 걸까”
이명박 대통령은 주요 경제단체장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기업인들과의 ‘핫라인’을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5일 청와대 쪽이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 기업인 등과 통화를 했지만,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도 전화를 직접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는 기존의 휴대전화가 아닌 정부에서 지급한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대통령의 새 휴대전화 번호를 일부 인사들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통화를 필요로 할 때마다 연결시켜주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열린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제게 직접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이미 여러 차례 경제인들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도록 통로를 개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며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를 좀더 (광범위하게)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된 건 없으나, 지금도 통화를 원하는 분(기업인)들은 (대통령과) 연결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업인과의 ‘핫라인’ 개설과 관련해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기업 애로요인을 챙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 재벌그룹의 부사장급 임원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애로사항을 얘기한다는 건 주무부처 장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셈인데, 대통령께 직보해 장관이나 관련 공무원을 바보로 만들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기업의 한 임원도 “현실적으로 전화 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라며 “대통령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비공식 창구가 생기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핫라인 개설’로 인해 역으로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수시로 찾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꺼려하는 분위기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핫라인 추진’ 철회를 촉구하는 논평을 내고 “대정부 로비 통로로 변질돼 정부정책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또 중소기업, 비정규직,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돼 사회통합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경기도 시흥 한국산업기술대에서 열린 상공인 초청 조찬강연에서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가 휴대전화로 실무자의 보고를 받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기업인이 대통령에게 직접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권태호 홍대선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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