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영천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정동윤 열린우리당 후보가 24일 영천시 오미동에서 열린 영천 이씨 종친회 행사에 참석해 유권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영천/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그동안 해준게 뭐있노 “바꿔봐”
선물보따리 과연 줄까 “그래도”
여론조사 우리당 우세하긴 한데…
막판 지역 바람…뚜껑 열어봐야 “한나라당이 해준 게 머있노, 그런 마음이다. 바꾸자 카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래도 지역정서를 극복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막상 찍으러 가믄 마음이 어떨는지….” 지난 22일 경북 영천 완산시장에서 만난 약사 임치훈(34)씨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바람이 불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구 약령시, 안동장과 더불어 경북 3대 시장으로 꼽히는 영천 5일장이 열린 이날, 시장 곳곳에서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이아무개(67·여)씨는 “너무 지쳐가, 한나라당 뽑아 보내도 무슨 소용이 있노. 할 일 없어 외지로 나가고, 아파트도 텅텅 비어 있다”며 “지금까지는 고민도 안 하고 한나라당 찍어줬는데 이번엔 반응이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장효웅(45)씨는 “젊은 사람들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번엔 당 보고 찍는다 칸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란 40∼50대이고, 당이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여당’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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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인 영천의 인구는 1980년대 초반 18만명을 꼭지점으로 20여년 사이 11만명으로까지 곤두박질쳤다. 장기간에 걸친 지역 낙후와 경기 침체의 결과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동안 뽑아준 한나라당에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소속인 이덕모 전 의원과 박진규 전 시장이 모두 돈 문제로 중도하차한 것도 한나라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영천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지역주의 극복이란 명제로 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역발전이라는 요구를 ‘힘있는 여당’에 기대 풀어내고자 했다.
50대 여성 유권자는 “살림살이 하는데 주걱 쥐고 있는 사람이 밥 푸는 거를 더 잘 안 하겠나”며 “일단 속는 셈 치고 여당한테 3년을 맡겨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택시를 모는 강태랑(65)씨는 “집권당 찍어 주고 덕 좀 보자는 말이 많다”고 전했다. 김아무개(67·자영업)씨는 “한나라당 정희수 후보는 영천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열린우리당 정동윤 후보는 예전에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불만도 많다”며 “인물이 문제가 아니고, 영천 발전을 위해 여당에 표를 주는 게 낫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 지역단체 관계자는 이런 심리를 “보리밥만 먹고 살다가 옆집 쌀밥도 한 번 먹어보자고 기웃거리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수십년 동안 여당에 익숙했던 이들로서는,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 정당과 여당이 불일치했던 ‘짧은’ 경험이 익숙치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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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뜻 마음이 열린우리당으로 쏠리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나 냉소는 여당 쪽에도 쏟아지고 있다. 농민 이상근(62)씨는 “여당 후보가 당선 되면 한보따리 가져온다 카는데, 그걸 어떻게 믿나”라며 “열린우리당 정동윤이도 12∼13대 여당 소속이었고, 3선을 한 박헌기 의원도 여당을 안 해봤나”라고 되물었다. 한 유권자는 “여당이 되면 선물 준다는 건 결국 그동안 야당 지역이어서 푸대접했다는 말이냐”고 말했다. 주민 이대달(60)씨는 “영천이 변해야 한다 카고는 있지만, 소문하고는 틀릴 것”이라며 “아직까지 경상도는 현재 야당이고, 야당이 정권을 잡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농사를 짓는다는 이아무개(70·여)씨는 “하도 답답하니까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찍어 준 한나라당을 안 찍기도 미안하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누구도 선거 결과에 대해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24일 “여론조사에서 다소 뒤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아직 표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특히 박근혜 대표가 주말마다 찾아 오면서 시골 노인층 표가 우리 쪽으로 몰려 격차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상당히 앞서가고 있지만, 부동층이 많아 이 격차가 투표장까지 연결될지는 미지수”라며 “워낙 보수적인 지역이어서 막판에 지역주의 바람이 불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천/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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