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원석 상황실장(맨 왼쪽)이 정부의 고시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졸속 굴욕협상 → 부실 땜질 입안 → 막무가내 고시
‘졸속·굴욕 협상’에 이어 핵심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부실 입안예고’ 그리고 국민의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은 ‘막무가내 고시’까지.
농림수산식품부가 29일 미국산 쇠고기 새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를 확정해, 한-미 쇠고기 협상에 따른 국내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처음부터 실패를 예고한 협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열린 협상은 결국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달 18일 정치적 결단에 의해 타결됐고, 그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면 개방과 검역주권 포기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비준동의와 대통령의 ‘방미 선물’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과 농림수산식품부를 자문해온 위생검역 전문가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된 협상이었다.
이후 입안예고와 장관 고시로 이어지는 과정도 부실과 땜질 처방의 연속이었다. 시간에 쫓겨 협상을 하다 보니, 협상 타결 당시에는 수입위생조건 영문본만 만들어 양쪽 대표가 서명을 했고, 수입위생조건 한글본과 합의요록은 협상 타결 2주 뒤에 문구를 확정하고 양쪽이 서명한 문서를 교환했다. 그런데 새 수입위생조건의 입안예고는 수입위생조건 한글본이 확정되기도 전인 지난달 22일 시작됐다. 영문본 수입위생조건을 번역한 뒤 미국 쪽과 문구 조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예고를 한 것이다.
정부는 국민적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입안예고 기간에 접수된 국민 의견이 너무 많아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15일로 예정된 고시를 연기했다. 이후 통상교섭본부가 미국과 추가 협의를 벌였지만, 광우병 발생 때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국제법상 인정된 주권적 권리를 문서에 적어 교환하는 데 그쳤다.
한 차례 연기됐던 장관 고시일은 23~27일로 예상됐지만, 농식품부는 축산 대책 등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고시를 다시 한번 연기했다. 지난 28일에는 농식품부가 장관 고시 ‘사전정지 작업’으로 축산단체장들을 불러 축산 대책을 설명하려 했지만, 축산단체장들이 재협상을 요구하며 면담을 거부했다. 또 지난 28일 저녁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이 고시 내용을 한나라당에 보고했다가 보완 지시를 받은 데 이어 29일 오전에도 추가 보완 지시를 받아 애초 2시로 예정됐던 장관 고시 발표가 4시로 미뤄졌고, 결국 협상 타결 41일 만에 국민적 저항을 무릅쓰고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가 강행됐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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