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정치] 오해와진실3. 각당의 전자정당화 수준
<한겨레>는 인터넷정치를 주제로 정치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인터넷, 온라인 트렌드와 정치와의 관계, 전자정당화 등 3차례에 나눠서 살펴본다. [편집자]
개혁당이 던진 화두, 인터넷정당
“인터넷정당은 일상적인 당원의 활동과 의사소통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정당의 형태를 말한다. 당의 주요정책과 지도부 선출 등 인사권이 당원들의 전자투표로 이뤄지고 온라인에서 전국당원대회를 상시화하며 당원들의 직접민주주의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정당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당원들과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얼마나 끌어올리고 있는가? 인터넷은 홈페이지나 미니홈피, 블로그 등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의사소통하는 수단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텟은 정당 민주화를 실현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지난 2002년 11월 창당한 개혁국민정당은 한국정당사에 인터넷정당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인터넷정당은 인터넷의 특징인 쌍방향성을 기반으로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극대화하고, 전자투표를 통한 지도부의 선출과 주요 당론의 결정 등 정당 민주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또 온라인을 통한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집행내역을 공개함으로써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인터넷정당은 ‘돈 안드는 정치’와 ‘참여정치’ ‘투명정치’로 가는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개혁당은 창당 1년여 만에 해체됐다. 인터넷정당의 정치개혁 실험도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개혁당이 던진 화두는 정당개혁의 모델로 남았다. 열린우리당의 전자정당론과 한나라당의 디지털정당론, 민주노동당의 당 운영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자정당’ ‘디지털정당’ 요란했던 정치구호는 선거용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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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4월9일 서울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열린 디지털정당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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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당 이후 한국정당사에서 전자정당이 전면에 부상한 것은 2003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대선에서 확인된 인터넷 여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 정당은 앞다퉈 사이버전략을 수립했다. 한나라당은 ‘i-한나라 추진 기획단’을 꾸렸고 당시 민주당은 ‘전자정당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i-한나라 추진기획단’의 핵심 목표는 ‘오프라인’의 당 조직을 모두 온라인과 연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전국 각 지구당에 인트라넷(조직 내부 정보통합시스템)을 구축해, 일반 당원과 중앙당의 ‘쌍방향 소통’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민주당 전자정당추진위원회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을 통해 당비납부, 당론결정, 정책수립·홍보, 당원 및 지지자 관리, 선거준비을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현대적 전자정당 실현전략’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또 전자투표를 상설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전자정당화의 모태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창당 과정에서 가장 의욕을 보였던 것도 전자정당화였다. 창당주비위 시절 배기선 e-party위원회 위원장은 “정당활동의 중심축이 온라인상의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해 이뤄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고비용 저효율 정치, 국민의 참여없는 정치, 깨끗하지 못한 정치를 전자정당을 통해 뛰어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 디지털정당 선포식을 갖고 △첨단 IT시스템 도입으로 과학적 민의수렴 △인터넷 전자투표, 당원 인터라넷을 통한 의사결정의 민주화 △시민단체와의 디지털 정책 네트워크 구축 등 디지털정당화 5대 목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는 당시 “당의 기구와 기능을 사이버로 구축해 온라인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공약했다.
“전자정당을 위한 현실적 노력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구호만 요란했을 뿐 현실은 홈페이지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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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위)와 한나라당 홈페이지(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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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자정당과 디지털정당의 구호는 총선이 끝난 뒤 표류하고 있다. 정당운영과 당의 의사결정을 온라인화하겠다는 약속은 ‘부도’났다. 전자정당은 홈페이지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한 정책 홍보, 라이브폴과 게시판의 여론수렴기능, 커뮤니티의 활성화, 일부 당에서 시행하는 제한적인 전자투표가 각당이 추구하는 전자정당의 현재 모습이다. 전자정당의 청사진 가운데 온라인을 통한 당론 수렴과 결정, 정치자금의 개혁(온라인을 통한 모금과 공개), 전자투표의 활성화, 전자당원증, 블로그 등 정당운영의 온라인화를 위한 핵심내용은 아직 실행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전자정당이 아니라 홈페이지정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최근 전자정당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김진욱씨는 “정당정치의 90% 이상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이뤄지고 있고 전자정당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의미에서 전자정당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며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파티(e-party), 디지털정당 등과 같이 전자정당이 모두 완성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지난 16대 대선에서 나타났듯 인터넷 세대인 젊은층을 흡수하지 않으면 선거승리가 어려웠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전자정당을 정치적 구호로 내세운 측면이 있다”며 “정치적 구호뿐 아니라 발달된 인터넷 기술과 전자정당화가 결합했다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격차·돈이 없어 전자정당화가 안된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민주당의 전자정당기획단장을 맡으며 전자정당화와 인터넷 선거에 깊숙히 개입했던 포스닥(www.posdaq.co.kr)의 신철호 대표는 “정당민주화의 핵심적 구호로 전자정당을 외쳤으나 현실적 노력은 후순위로 밀렸다”며 “전자정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카탈로그로서 ‘홈페이지정당’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신 대표는 “표를 얻기 위한 선거전략으로서 인터넷이 있을 뿐, 이를 활용해 국민과 의사소통하고 조직을 투명화하고, 참여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각 정당 실무자들의 고민은 전자정당의 이상은 유효하지만 실행을 위한 현실적인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데 닿아 있다. 한나라당 디지털정당팀 김대원 팀장은 “디지털정당은 당을 홍보하고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며 “하지만 당원과 국민들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으면 성립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전자전당실 이원욱 실장도 “전자정당화는 정당 운영의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당원과 국민들의 참여의 수준을 봤을 때 전자정당화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당원 가운데 인터넷에 친숙하지 않은 40대 이상이 70%를 차지한다. 당원카드에 이메일을 적어내는 비율은 20%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지난 청년위원장 인터넷투표만 하더라도 투표율이 11%에 그쳤다. 이런 상태에서 전자정당화는 오히려 당의 의사결정이 인터넷 마인드를 갖춘 20%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정당화 서두르면 인터넷마인드 갖춘 20%에 의해 의사결정 왜곡돼”
실무자들은 정당의 빠듯한 살림살이도 전자정당화가 지연되는 원인이라고 토로한다. 전자투표나 전자당원증, 온라인을 통한 당원가입과 탈퇴 시스템 등은 정당들이 지금 당장 도입해서 쓸 수 있을만큼 IT 기술은 발달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한나라당 김 팀장은 “디지털정당을 구현하는 데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문제”라며 “공인인증시스템, 방화벽 등을 갖추려면 수억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정당의 빠듯한 살람 탓에 쉽게 투자를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이 실장도 “중앙당 운영경비를 보면 월 2~3억원으로 빠듯한 상황이라 홈페이지 개편에 드는 비용도 아끼고 있는 실정”이라며 “공인인증시스템 등 추가 인프라 구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포스닥 신 대표는 “전자정당을 위한 현실적 노력은 늘 후순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종이홍보물과 현수막은 전국에 배포할지언정 인터넷에 배정되는 예산은 우선순위가 한참이나 뒤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예산과 인사가 한 조직의 의지와 방향을 결정한다고 본다면 전자정당을 선도해야 할 정당들의 의지는 한참이나 부족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총선전에 곧 전자정당 시대가 열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홈페이지정당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모범생 민주노동당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구호만 요란하게 전자정당화를 추진하는 것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현실을 고려해 차근차근 전자정당화에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내경선에서 제도권 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등 전자정당화에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민주노동당의 전자정당화가 다른 당과 다른 점은 전자정당화를 위한 당규의 정비 등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기초공사부터 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당원과 국민들의 의견을 누가,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등 인터넷 운영규칙을 당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당론을 결정하기 위한 인터넷 전자투표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당원들이 지도부를 견제할 수 있는 소환제도 온라인을 통해 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당 정책과 관련한 안건 발의에 있어 온라인 서명의 효력을 오프라인과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다. 지난 연말 발족한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안건 서명운동이 시작돼 500여명이 비정규운동본부 구성을 위한 서명에 참여했고, 중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평당원들도 안건 발의를 일상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례였다.
윤영태 인터넷실장은 “당원 가운데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생산직 종사자가 45% 가량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보수정당들처럼 전자정당화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며 “비교적 돈이 들지 않는 것부터 내실있게 전자정당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보수정당들이 전자정당을 정치적 언술로, 쇼로, 이벤트로 이용하면서 전자정당이 아니라 이벤트정당화 하고 있다”며 “전자정당화는 당원과 국민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 온라인 여론을 당론에 반영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기성 정당들이 전자정당화를 선언한 지 2년여가 지났다. 이제 구호보다 전자정당화를 통한 당 개혁과 정치개혁의 성과물을 보여줄 때이다. <끝>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