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교수
교과서를 정치도구화 ‘민주주의 후퇴’로
필자 자기검열 우려…다양성 위축될것
필자 자기검열 우려…다양성 위축될것
금성출판 ‘한국 근·현대사’ 대표필진 사퇴 김한종 교수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방침에 맞서 역사학계와 교육운동 단체들이 공동대응에 나서는 등 ‘교과서 논쟁’이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대표 저자인 김한종(50)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가 2011년부터 사용될 새 역사교과서 집필진에서 중도하차했다. 김 교수는 1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집필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다시 집필을 하면 내용에 상관없이 또다시 공격의 빌미가 돼,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누를 끼칠게 될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논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답답했습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정치공세에 휘말리고 언론에 보도되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냥 ‘낙인’이 찍힙니다.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6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자신이 쓴 교과서를 두고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고 지적한 것을 단적인 왜곡 사례로 꼽았다. 정 의원이 제시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299쪽(‘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김일성 체제의 확립’ 단원)의 ‘생각 열기’ 부분에 실려 있는 글이다. “사회주의 기초 건설의 과업은 사회주의적 개조를 전면적으로 실현하여 … 자립 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닦는 것이었다.”(김한길, 현대조선역사)라는 내용이다. <현대조선역사>는 북한의 역사책이다.
“국감 당시에는 정 의원이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베꼈다’는 근거로 이 부분을 짚고 있더군요.” 그는 따옴표를 붙이고 출처까지 밝혀 인용한 것을 ‘베끼기’라고 몰아붙이고 언론까지 이념공세를 펴는 데 대해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무조건 ‘친북’이라고 못박고 싶었겠죠.”
이뿐만이 아니다.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은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현대사 서술이 시작되는 도입부(247쪽)에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소개한 점을 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껍데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난독증’(문자를 판독하는 데 이상이 있는 증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를 암울하고 어렵게 했던 요인인 분단과 독재 등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흥미롭게 현대사를 접하게 해주고 싶어 시를 인용했어요. 학생들이 보는 참고서만 봐도 껍데기라는 시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는 교과부가 펴낸 국정교과서인 중3 국어 교과서와 검정인 고교 문학 교과서 11종에 모두 실려 있다.
김 교수는 교과서 집필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지만, 여전히 아쉽다고 했다. “교과서는 흥미로워야 해요. 솔직히 제 교과서에 부족한 점이 많죠. 생활사·문화사도 더 넣고 싶고, 구성도 좀더 재미있게 하는 등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 그는 또 한편으로 걱정도 크다고 했다. “뉴라이트와 정부는 사회가 민주화된 뒤 한국이 ‘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과서는 그저 공격의 매개일 뿐이죠. 앞으로 집필자들의 ‘자기검열’과 교과부의 검정이 상당히 엄격해질 겁니다. 검정교과서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 다양성인데,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죠.”
글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글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