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불투명’ 이유로 제주도 대북사업 지원 거부
“11년간 문제없던 투명성기준 갑자기 높여” 지적
“11년간 문제없던 투명성기준 갑자기 높여” 지적
정부가 시기의 부적절성과 분배 투명성 부족을 들어 제주도가 요청한 대북 감귤·당근 지원사업의 물자수송비 지원을 거부했다. 올해 당국 차원의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주로 북한 어린이에게 건네질 감귤·당근 보내기마저 11년 만에 제동을 건 것이다.
통일부는 26일 “최근 제212차 남북 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서면회의 결과 제주도의 대북 감귤·당근 지원사업에 물자수송비 20억4천만원을 지원하는 안건을 부결했다”고 밝혔다. 교추협은 통일부 장관 주재로 각 부처 차관급 공무원 등이 참여해 남북협력기금 등 남북 교류 관련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이번 교추협에서 현대아산 협력업체들에 대한 70억원의 남북협력기금 대출은 승인됐다.
정부가 제주도의 대북 감귤·당근 지원사업에 대한 수송비 지원을 거부한 것은 처음이다. 제주도는 1998년 이후 민관 합동으로 해마다 1만t 가량의 감귤과 당근을 북에 지원해 왔고, 정부는 2001년부터 매년 남북협력기금으로 수송비를 보탰다.
통일부는 감귤·당근사업 지원 부결 이유에 대해 “남북 관계 상황상 기금 지원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고 지원물품의 분배 투명성과 관련한 협의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특히 분배 투명성과 관련해 예년보다 구체적인 모니터링 절차를 명문화하는 방안을 요구했으나 북쪽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연말까지 써야 하는 올해 기금집행을 승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1년 동안 이뤄져 온 분배 모니터링 절차를, 그것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문제삼아 기금 지원을 거부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도와 함께 감귤·당근 지원사업을 벌여오고 있는 지역단체인 남북협력운동본부 김일두 간사는 “이전에도 감귤을 보낸 뒤 유아원 등 한두 곳을 방문해 확인작업을 했지만, 정부는 이번부터 몇 곳, 몇 회 등 구체적 명문화를 요구했다”며 “갑자기 투명성 기준을 높이려니 북쪽과 협의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대북 감귤·당근 지원사업은 정부의 지원거부로 고비를 맞게 됐다. 윤창성 제주도청 감귤계장은 “시간이 촉박한데다 성금을 낸 농민단체 등과도 협의를 해야 해 현재로선 보낸다, 안 보낸다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원이 계속되더라도 규모는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성준 남북협력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지원 규모를 1천t 정도로 줄이고 일부 금액을 수송비로 돌려서라도 지원 끈을 이어가야 한다”며 “귤은 북쪽 아이들에게 과일이라기보다는 거의 유일한 비타민 시(C) 영양제이자 때로는 감기약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귤 1천t은 대략 600~800만개 정도로, 300만여 북한 어린이 1명당 2~3개꼴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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