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총리(오른쪽)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협상 굳어지는 한-미FTA] 한국 먼저 비준하면?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먼저 비준해 두는 것이 재협상 국면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향후 협상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 미국이 어떤 형태의 재협상 요구를 들고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미국도 가능한 한 양국 정부에 부담이 적은 형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미국 실무진들은 각종 시나리오에 대해 검토를 할 것”이라며 “가장 부담이 적으면서도 가장 실효성이 있는 방안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번 미국과 쇠고기 추가협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에 서명된 협정문을 그대로 놔두고 양쪽의 추가합의 내용을 담은 서한을 덧붙이는 형태나 자동차 협상과 관련된 부분만 따로 떼어내 재협상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내 자동차업계의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한국 정부의 정치적인 부담은 줄여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이 먼저 국회 비준을 할 경우 독소 조항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기존 협정문을 고수하는 수동적인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협정문에 전혀 손을 댈 수 없으므로 자동차나 쇠고기 부문에 대한 추가적인 양보만 하게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통상 절차는 우리보다 훨씬 복잡하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대외조약에 대한 협상 및 체결 권한을 의회가 갖고 있다. 2007년 4월 타결된 협상을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맡았던 것은, 당시 의회가 특별결의로 협상권을 행정부에 위임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무역촉진권한’(TPA)은 2007년 6월1일로 시한이 만료됐다. 따라서 한국과 재협상을 하려면 무역촉진권한 조항을 다시 살려야 하므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우리가 먼저 국회 비준을 하면 그때부터 한-미 에프티에이가 국내에서 효력을 발효하므로, 이와 충돌하는 국내 관련법률을 순차적으로 수정하거나 통과시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재협상에 들어가면 국내 법·제도 등이 엉클어질 수 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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