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대표(앞줄 가운데)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29일 밤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 상황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박희태 체제 사망선고” 지도부 교체등 계파갈등 커질듯
여야가 정치적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친 4·29 국회의원 재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 야당과 무소속의 선전으로 끝났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동력은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권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인 부평과 시흥(시장 보궐선거), 울산 북구의 유권자들이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여당 후보를 뽑아 달라”는 한나라당의 호소에도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전면에 내건 민주당과 진보신당 후보를 선택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경주에서 ‘친박근혜’를 자임한 정수성 무소속 후보가 친이명박계 핵심인 정종복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따돌려 친여 성향 유권자들조차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컨설팅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반감을 가진 야권 성향의 유권자는 결집하고, 친여 성향의 유권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표출하며 분열하는 흐름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앞으로 유권자들의 이런 선택이 가속화하면서 정치적 유동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은 4·29 재보선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5개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 가운데 경주와 부평에서 이길 것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0 대 5’ 참패가 현실이 되고,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으로 평가됐던 시흥시장 보궐선거까지 패배하자,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논란이 본격화됐다.
한나라당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박희태 대표 중심의 현재 지도부는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며 “지도부 교체를 위한 조기 전당대회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권 한 재선 의원도 “이대로 가면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도 참패할 것”이라며 “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결단을 해야 한다”고 사퇴를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대안 부재론’을 이유로 당분간 박 대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 강하고, 박근혜 대표 쪽도 당 내분이 조기에 촉발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지도부 책임론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이 직계인 안국포럼 출신 한 의원은 “박 대표 사퇴론이 전면화되는 것은 친이계는 물론 친박계도 부담이 너무 크고, 현재로서는 박 대표 말고 대안도 없다”며 “사무총장, 전략기획본부장 등 중하위 당직자를 교체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성향의 한 최고위원도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또다시 지도부 인책론이 불거질 텐데, 지금 박 대표를 흔들어서 얻을 게 없다”며 확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대안 부재에 따른 일시적 휴전일 뿐, 물밑에서 계파 갈등과 권력투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5월 중순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이 직계 안에서는 “당을 확실히 장악해 친박으로 쏠림 현상을 차단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반면, 친박 쪽은 “우리는 급할 게 없다. 친박을 무력화하는 행태를 고집하면 당내 분란만 커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계파간 줄서기와 눈치보기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남권 한 초선 의원은 “경주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이 막강하다는 게 거듭 확인됐다”며 “앞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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