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을 확정해, 인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1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연쇄살인이나 ‘아동 성폭행 살해’ 등 반인륜적 중대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을 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에 대해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를 공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신상 공개의 범위는 ‘피의자가 자백했거나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 한정했다.
법무부는 “최근 5년간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 발생률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고 연쇄살인·아동 성폭행 살해 등 반인륜적 범죄가 끊이지 않아 흉악사범의 얼굴 등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개정안을 마련한 이유를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7월 안에 대통령 서명을 받아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시민단체들은 이 개정안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고, 사법부 고유의 권한을 행정부가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흉악범 얼굴 공개는 일종의 명예형으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뤄져야 할 처벌을 행정당국이 재판도 받기 전에 하겠다는 뜻”이라며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인권과 헌법체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는 추상적 기준만 있어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며 “피의자 얼굴 공개는 일반 시민들의 심리적 흥분에 기반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손원제 이경미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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