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경축사중 가장 실망” 우상호 민주당 새 대변인(가운데)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역대 대통령 경축사 중 가장 실망스럽다”라고 논평하고 있다. 왼쪽은 유은혜 수석 부대변인, 오른쪽은 조백희 외신 담당 부대변인.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대통령 ‘8·15 경축사’]
군사적 신뢰 있어야 가능
현 상황선 뜬금없는 제안
군사적 신뢰 있어야 가능
현 상황선 뜬금없는 제안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간 재래식 무기 감축’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99년 5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시엔엔>과의 회견에서 ‘남북 군비통제 실현’을 언급한 뒤 현직 대통령이 직접 군축 문제를 꺼낸 것은 10년 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남북간 정치·군사적 이야기가 없었는데, 북핵폐기 같은 전제조건 없이 논의하겠다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결과제인 군축 논의를 직접 제안한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번 군축 제안의 현실화 가능성을 두고는 정부 관계자들도 회의적이다. 북한의 부정적 반응이 명확히 예상되고, 군축 논의 의 전제인 남북간 군사적 신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쪽은 군축과 관련해 합의가 쉬운 사회문화교류에서 시작해 긴장 완화를 거친 뒤 군사적 신뢰구축→군비제한→군비감축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방안을 제기해왔다. 군사적 신뢰구축의 모델로 꼽히는 냉전 때 유럽 군축 사례를 봐도,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한 안보관계 개선과 동시에 정치·경제·사회·문화·인도적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다.
최근 남북 관계가 정치·군사신뢰 구축은 커녕 기존 사회문화교류, 경제협력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의 군축 제안은 다소 뜬금없다. 이번 군축 제의를 ‘남북관계를 통 크게 풀겠다’는 이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보기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보수 성향인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도 “대화와 긴장완화 조처가 군축 논의와 병행돼야 하는데 지금 남북관계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북-미 협의 등 국제사회 주도로 풀릴 것에 대비해 재래식 무기는 남북 당사자끼리 해결책을 내놓자며 이번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남북 군축과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연계하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군축 논의는 상호 위협 감소가 전제인데, 주한미군의 규모조정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면 북쪽의 호응을 유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북의 군사적 비대칭성도 남북 군축 논의의 걸림돌이다. 남북이 보유한 병력의 구조나 무기체계의 종류 등이 서로 비슷해야 감축할 병력과 무기를 산정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난에 빠진 북한은 남한과의 재래식 군비 경쟁을 포기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이란 ‘비대칭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군축 제안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 군축 논의는 어렵더라도 이번 제안을 계기로 남북 정치·군사 대화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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