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들이기로 주도권 잡고 효과 극대화
“김 위원장, 남북관계 직접관리 과시”
“김 위원장, 남북관계 직접관리 과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외빈 접견을 통해 건재를 과시하는 ‘면담 통치’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접견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면담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3시간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4일에도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접견 75분, 만찬 120분 등 모두 195분 동안 면담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동행한 로저 밴드 박사를 통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관찰한 결과 문제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위원장이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급변사태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미국 행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현 회장 면담은 그로부터 불과 열이틀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일회용으로 연출된 것일 수 있다는 일각의 의혹조차 불식시키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사전 예고 없는 ‘깜짝 면담’ 방식으로 현 회장을 만났다. 지난 10일 방북한 현 회장은 애초 12일로 잡았던 귀환일을 13, 14, 15, 16, 17일로 다섯 차례 연장했다. 결국 면담이 불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높아지는 와중에 극적 반전이 이뤄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런 접견 방식은 기본적으로 경호를 위한 것이지만, 특유의 협상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뜸들이기’를 통해 자신의 출현이 가져올 효과를 극대화하고, 면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러시아 등 주요 우방국과의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중국이나 미국 쪽 고위 인사들의 방북 때도 사전에 면담 일정을 확약해주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4월 방북했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일방성은 국제적 외교 관행에 어긋난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이후 중국과 미국에 이어 남쪽 인사인 현 회장을 면담한 점도 특기할 만 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공개활동 복귀 뒤 지난 1월23일 첫 외빈으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이때 독주를 곁들여 만찬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이어 6개월여 만에 클린턴 전 대통령, 현 회장을 차례로 만났다. 중국→미국→남쪽 차례다.
한 대북소식통은 “북쪽의 생존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순서대로 외빈 접견을 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현 회장 면담은 남북관계도 직접 관리한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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