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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한나라 ‘김형욱 발표’ 정색한 속사정

등록 2005-05-28 11:15수정 2005-05-28 11:15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조사활동 중간보고와 사건조사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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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조사활동 중간보고와 사건조사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초법’ 딱지 붙여 과거사 정리 발목잡기…과거사위 험로 예고

국가정보원이 지난 26일 박정희 정권시절 대표적인 의문사 가운데 하나인 김형욱 실종사건의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정치권에선 때아닌 위법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 진실위원회는 이날 “김형욱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논란이 야기되고 국민들 사이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설명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과거사법을 위반한 초법적 과거사 조사”라거나 “오일게이트, 행당도 사건 등 각종 의혹사건을 물타기 위한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이런 한나라당의 공세는 일회용이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국방부, 경찰 등이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과거사 규명작업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출범하는 범정부 차원의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국정원의 김형욱 사건 중간발표는 과거사법을 위반했을까? 또, 한나라당은 김형욱 사건의 위법 논란을 제기하며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한나라당 “국가기관 과거사 발표는 초법적”


과거사법 33조3항 “국가기관 자체기구 설치 가능”

한나라당이 국정원 발표가 초법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지난 5월초 여야 합의로 통과한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이하 과거사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과거사법을 주도적으로 입안한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원 발표를 “초법적이며, 국회의 권한 침해”라고 주장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유 의원은 국정원 발표 뒤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 및 발표는 국회가 제정한 과거사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국회 권한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만일 국정원이 계속해 초법적인 과거사 조사를 하는 경우 피의사실 공표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도 “최근 과거사법이 국회를 통과해, 과거 의혹사건들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제도와 법적 장치가 마련된 만큼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유 의원은 2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공표되지 않았고 법 시행은 11월에나 되는데, 국가기관이 과거사를 먼저 발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과거사법에 따라 과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국가기관에 위원회나 별도기구가 구성되는 것이 맞다”고 위법성을 지적했다.

유 의원은 또 “국민의 알권리 충족도 중요하지만 동일한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행정기관의 조사 결과가 다르면 공권력의 신뢰만 실추될 뿐”이라며 “(국정원 발표를 놓고) 김형욱 가족들이 명예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는데, 행정기관이 무턱대고 발표했다가 피의사실 공표나 명예훼손에 걸리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말했다.

그러나, 유 의원의 주장은 자신이 직접 참여해 만든 과거사법의 취지와는 다르다. 과거사법 33조3항에는 ‘진실규명 관련 국가기관은 자체 진실규명을 위한 위원회 등 특별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여야가 과거사법을 협상하고 있는 동안 국정원 진실위원회는 이미 활동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나라당은 협상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다.

문병호 의원 “국정원 발표는 과거사법과 무관”

이창수 대표 “국민 알권리 차원의 민원업무로 봐야”

과거사법 개정 작업의 여당쪽 실무를 맡은 문병호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김형욱 사건 발표는 국정원 스스로 자체 내규나 훈령에 의해 과거의 잘못을 조사하고 국민에 사과하겠다는 것”이라며 “과거사법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문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가기관의 자체조사가 위법적이라면 과거사법 협상당시 국정원 진실위원회 활동을 중지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오히려 과거사법에 국가기관이 위원회나 별도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은 정치적 수사일 뿐 법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안병욱 국정원 진실위원(가톨릭대 교수)은 “공포 6개월 뒤 발효되는 국회 과거사법이 아직 발효되지 않았고, 국정원 진실위가 국회 과거사법에 의해 출범한 게 아닌 만큼 활동에 문제가 없다”며 “우리는 그 법의 정신을 따르지만 법의 지침 등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도 “(위법 주장은) 한마디로 난센스”라며 “국정원, 군, 경찰 등 국가기관이 과거사를 조사해 발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민원 사무를 처리하는 고유 업무로 보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부일장학회·경향신문 강제매각 등 줄줄이 베일 벗을 듯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국정원 발표에 민감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과거사 발표에 던지는 또 한가지 의혹은 이른바 오일게이트와 행담도 사건 등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각종 의혹사건의 물타기용이라는 것이다.

임태희 수석부대표는 26일 “이번 조사결과 발표가 유전의혹과 행담도 의혹 등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며 “현 정권이 의혹사건을 덮기 위해 과거사 문제를 활용한다면 전형적인 정치공작이고, 역사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오영식 원내 부대표는 “한나라당이 ‘정치적 이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당당하지 못한 태도이며, 이를 특정시대 특정인에 연결시켜 정략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과거사 진상규명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과거사 문제의 일개 사안에 불과한 김형욱 사건을 놓고 정치권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거사법의 발효로 본격화될 과거사 정리작업을 둘러싼 기선싸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정원을 시작으로 국방부와 경찰 등 다른 국가기관도 줄줄이 과거사에 대한 자체 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기로 한 터여서, 한나라당 처지에서는 미리 쐐기를 막아둘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과거사법은 30일 공표될 예정이며 오는 11월께 과거사정리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4년여 동안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과거사정리위원회와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의 활동에 따라 부일장학회·경향신문 강제매각, 김대중 납치사건, 대한항공 858기 사건, 인혁당을 비롯해 각종 간첩단 사건 등 박정희 정권과 군사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의혹사건이 줄줄이 베일을 벗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유신과 5·6공화국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이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인 박근혜 대표도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흔적이 드러나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과거사정리위원회 험난한 행보의 전주곡인가?

좌익·민주인사 조사범위 포함 놓고 논란 예고

한나라당은 지난 5월초 과거사법 국회 협상 과정에서 조사범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 조항이 삽입됨으로써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조사범위를 놓고 지루한 공방이 벌어질 결정적 빌미가 생겼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다. 조사범위에 민주인사나 좌익세력의 활동을 포함시키는 문제가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할 경우 위원회 조사활동은 시작도 못하고 발이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수 대표는 “법 자체가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화해와 협력이라는 본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보다는 정치적 흥정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조사범위를 놓고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정원 발표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과민반응과 정치적 공격이 과거사 진상규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유다.

한편, 1천여 시민·인권단체들은 ‘올바른 과거 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과거청산 범국민위)를 꾸리고 과거사법의 독소조항을 고치는 법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범국민위는 오는 6월2일 간담회를 열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조사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탄압’ 우려가 있으므로 조사 대상에서 빼고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조사 대상에서 뺀 조항을 삭제하며 △군 의문사를 조사 대상에 넣는 것 등을 뼈대로 한 개정안을 내놓기로 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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