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주호영 후보 청문회]
위장전입·세금탈루 눈감아 청문취지 훼손
이전 정부때 칼날추궁·사퇴압박과 대조적
위장전입·세금탈루 눈감아 청문취지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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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일영 대법관 후보자는 14일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양도세 탈루 등 자신과 관련한 의혹을 대부분 시인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집권 한나라당에서 그를 인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송광호 최고위원이 “용퇴가 애국”이라며 자진사퇴를 외쳤지만, 당내에선 별 반향이 없다.
민 대법관 후보자 말고도 ‘9·3 개각’으로 인사청문 대상이 된 7명의 고위 공직자 가운데 임태희 노동,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는 위장전입이 확인됐고, 정운찬 총리 후보자도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청문 대상자 대부분이 논문 표절, 소득세 탈루, 부동산 투기 따위의 의혹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지도부는 후보자들을 감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도덕성 검증에 매몰돼 후보자 자질 능력 검증이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주호영 특임장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후보자 감싸기에 나섰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는 집단적 도덕불감증을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들이 야당 시절 들이댄 엄격한 검증 잣대와 달라, 이른바 ‘이중잣대’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야당이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고위 공직자의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 등에 엄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총리 후보자 등 고위 공직자들을 잇따라 낙마시켰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상 총리 후보자, 장대환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이 불거지자 한나라당은 “위장전입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한 분이 국민에게 투기하지 말라, 위장전입하지 말라고 어떻게 얘기하겠냐”는 논리로 비판하며, 결국 인준안을 부결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우 부인의 20년 전 투기 사실을 문제삼아 결국 사임시켰다. 당시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부총리가 위장전입을 했던 때는 20년 전이고 과거사를 묻는 것은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만, 이는 이 땅의 대다수 공무원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공직에 봉사하며 절제와 검소한 삶을 산 수많은 중하위 공직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반드시 지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 ‘강부자’, ‘고소영’ 내각 공방 속에 위장전입 및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던 이춘호 여성부 장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을 사퇴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원내 다수 의석을 확보한 이후 한나라당은 위장전입 등 어지간한 의혹에는 무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 진전시켜온 고위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 기준은 나날이 후퇴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던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별 문제 없이 한나라당의 주도로 국회 인준을 받았다. 원세훈 국정원장 후보자의 경우 정보위 인사청문회에서 땅투기 의혹이 불거져 민주당 등 야당은 부적격을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청문보고서 의결을 강행했다. 지난 8월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4차례의 위장전입 사실이 확인됐지만 “치명적 하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면죄부를 받았다. 당시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 후보자 스스로 잘못을 시인했고, 17년 전의 과거사다. 나무 한 그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숲에 불을 지르려 하는 것은 무모한 꼬투리 정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이런 이중잣대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은 15일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과도하게 위장전입 문제를 지적한 데 대해 유감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문제제기했다. 주 후보자도 이에 대해 “적절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공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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