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국무총리
기자단과 고별 오찬…지난 일기에 ‘대통령·총리 관계 악화시 추천인 역사적 책임 져야’
한승수 국무총리(사진)가 23일 “대통령과 각 세우지 말라. 싸우지 말라”는 조언을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게 남겼다.
한 총리는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연 총리실 출입기자단과의 고별 오찬에서 “정운찬 후보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총리는 “정 후보자가 지명된 다음날인 지난 4일 총리실을 찾아왔을 때 한 얘기가 있다”며 그때 건넨 세가지 조언을 되풀이해 소개했다.
그는 “첫째, 총리 자리의 역사성을 봐야 한다. 항상 긴 안목으로 정책을 짜고 내각을 조정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둘째로 애국심이 필요하다. 총리는 출세하는 자리, 즐기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셋째, 총리는 대통령과 각 세워 다투는 자리가 아니다.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다”라고 말했다. 순간 좌중에선 “아” 하는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리로 임명되면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대조되는 ‘총리관’을 충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총리는 “총리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당장 뉴스의 초점이 될 수 있지만, 국민은 불안해 한다”며 “대통령과 싸우지 말라”고 덧붙였다. 또 “교수와 공직자의 발언은 언론에 반영되는 비중이 다르다”며 “총리의 발언은 크게 반영되니 말을 조심하고 아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 총리는 이날 “지난해 2월 취임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온 게 대학노트 6권째”라며 이 가운데 다섯권째 일기를 공개했다.
그는 총리 등의 개각이 발표된 지난 3일치 일기에 ‘정운찬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가 이회창 전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의 관계처럼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정 총리를 추천한 사람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취지로 썼다. 그는 ‘잘 해오던 여성부 장관을 바꾼 것은 ○○○가 확실해 보인다’는 식으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개각 인선 배경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일기에 남겼다. 그는 “매일 1~2시간 일기를 썼다. 회고록이 나가면 좀 팔리지 않겠느냐”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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