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6명, 국회 건의안 내기로
1979년 12월 13일 0시 15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 건물에서 총성이 울렸다. 신군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12·12 군사 반란을 진압하려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3공수여단 병력 10여명을 들여보냈고, 끝까지 사령관을 지키려던 김오랑 중령은 복부와 허벅지, 가슴에 여섯발의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이후 가족의 불행이 이어졌다. 김 중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충격에 눈이 멀었다. 기운을 차려 90년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했지만, 91년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냈지만, 지인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백씨는 화장되어 부산 영락공원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됐다.
김정권(한나라당) 강창일(민주당) 등 여야 의원 16명이 26일 반란군에 맞서다 희생된 김 중령에 대한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을 위한 건의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건의안을 대표발의한 김정권 의원은 “김 중령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지금까지 정당한 역사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97년 대법원에서 12·12군사반란 주동자에 대해 반란, 내란 수괴 등의 혐의를 인정한 만큼 이제 고인의 명예를 바로 세우고 왜곡된 근대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육사 25기인 김 중령은 죽음 직후 특전사 뒷산에 가매장 됐다가 육사동기들의 항의로 1980년 2월 겨우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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