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원로·민주당 지역위원장들 공개적 주문
“나보고 (서울시장에) 나오란 말인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보도를 보고난 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중얼거린 말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도 건강·재정 등을 이유로 서울시장 출마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히 지내려고 하는데 검찰이 자꾸 들쑤시고 있는 데 대한 반발의 뜻이었다. 총리 공관에서 5만달러를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흘러나오고 급기야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자, 시간이 지날수록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 뜻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정계 및 시민사회 원로 간담회’에서도 이런 말들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양정철 대변인은 “참석한 일부 원로들은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정권의 의도를 분쇄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게 필요한 만큼 한 전 총리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서울 지역 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 20여명도 노무현재단 사무실을 찾아 한 전 총리를 격려하며 “서울시장에 나오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앉아서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차라리 출마를 선언해 좀더 공세적으로 나오는 게 낫다는 의견이다. 한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우선은 닥친 일에 대해 집중하는 게 옳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라는 일부 의견은 신중하게 경청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적 신뢰를 받아 맞서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그는 “비상상황에서 서울시장 출마 운운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평생 민주화운동, 여성운동에 헌신해 왔고 국무총리까지 지냈지만 정작 한 전 총리에겐 인상깊은 ‘정치적 스토리’가 별로 없다. ‘정치인 한명숙’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지난 5월말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슬픈 떨림’으로 추도사를 낭독할 때부터였다. 그의 또다른 한 측근은 “한 전 총리가 이번 고비를 잘 넘긴다면 시련을 이겨낸 큰 정치인이라는 스토리가 만들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결국엔 모 아니면 도”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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