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한나라당 예결위 간사(앞줄 맨 왼쪽)가 31일 오전 민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에워싸고 있는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에서 “회의장이 245호실로 변경됐다”고 말하고 있다. 뒤편에서는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윗줄 오른쪽 셋째)이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민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의총뒤 그들만의 예결위…‘법안 처리전 예산심사’ 국회법 위반
정부안보다 1조 늘린 292조8000억 처리…4대강 뼈대 그대로
정부안보다 1조 늘린 292조8000억 처리…4대강 뼈대 그대로
한나라당은 31일 292조8159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 예결위에서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 그러나 이날 예산안은 민주당이 점거농성 중인 예결위 회의장을 피해 국회 본청 245호실에서 기습 처리됐고, 예산부수법안 처리 이전에 예산 심사를 금지한 ‘세입예산 사전심사 금지’(국회법 제84조) 규정을 어겼다는 논란까지 일면서 적법성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광림 의원은 이날 아침 7시10분께 예결위 회의장을 찾아 “이곳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하려고 한다”며 농성중인 민주당 의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막아서자,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열리던 본청 245호실로 회의장 변경을 긴급 공지한 뒤 7시25분께 한나라당 예결위원만 참석한 가운데 수정안을 기습 처리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이날 밤늦게 본회의를 열어 자체 수정한 예산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이날 처리한 수정안은 정부 원안 (291조7804억원)보다 1조355억원 증액한 292조8159억원이다. 세출예산은 정부안 202조8196억원에서 205조3312억원(2조5116억원 증액)으로, 기금은 정부안 88조9608억원에서 87조4847억원(1조4761억원 삭감)으로 조정됐다. 이에 따라 총지출 기준 전체 증액 규모는 4조2397억원, 감액은 3조2043억원이다.
한나라당은 최대 쟁점인 4대강 예산의 경우 국토해양부 소관 예산(3조5000억원) 가운데 2800억원, 수자원공사 이자보전금(800억원) 가운데 100억원 등 모두 4250억원을 삭감했다. 그러나 야당이 요구한 보의 개수와 높이, 준설량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 4대강 삭감분 가운데 1800억원은 적자국채 발행 규모 축소에, 나머지 2450억원은 4대강이 아닌 소하천 및 지방하천 정비 예산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민주당이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독처리는) 어쩔 수 없었다”며 예산안 예결위 처리의 적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한나라당의 회의장 변경은 2002년 3월 심재철 예결위원장 등 한나라당 주도로 도입한 날치기 금지 법안을 무력화하고, 예산부수법안이 법사위 통과 이전에 예산안 사전 심사를 금지한 국회법 제84조를 어긴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예결위 회의장을 변경해 날치기를 한 것은 불법이고 원천무효”라며 “한나라당 의총에서 통과된 예산안을 원상회복하지 않으면 몸을 던져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의 유선호 법사위원장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예산 부수법안은 예산을 전제로 해 논의하는 법으로,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날치기한 상황에서 부수법안을 정상적으로 처리해야 할지 의문”이라며 산회를 선포했다. 이로써 전날 처리된 소득세·법인세법 등 3건을 제외한 예산부수법안 20건은 처리되지 못했다.
이에 김형오 국회의장은 법사위에 계류중인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등 예산부수법안 9개를 이날 오후 1시30분까지 심사를 마쳐달라며 심사기일을 지정하고, 직권상정을 할 준비에 들어갔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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