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사실상 실업자’ 330만명
중장기 고용정책없이
기업 성장만 챙기다
뒤늦게 “일자리 최우선”
중장기 고용정책없이
기업 성장만 챙기다
뒤늦게 “일자리 최우선”
“무엇보다 성장을 해야 합니다. 성장을 해야 쓸 돈이 생기고 복지지출 같은 수요도 맞출 수 있는 겁니다.”
지난 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새해 정책 목표를 묻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윤 장관은 “그런데 옛날과 달리 성장을 해도 고용이 많이 늘어나지 않아서 문제”라고 덧붙였다. 윤 장관의 이 발언은, 현 정부의 경제운용 기조인 ‘성장 우선주의’와 엄연한 경제현실인 ‘고용 없는 경기회복’ 사이의 딜레마를 잘 드러낸다.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체계적인 중장기 고용정책이 없었다. 일자리 대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두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7% 성장’과 ‘5년간 일자리 300만개 창출’을 내세웠다. 감세·규제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통해 고성장을 달성하면 고용은 자연스럽게 창출된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효과’(낙수효과)를 믿은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참담하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통계청이 집계한 공식 실업자는 81만9000명이지만, 취업준비생과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그냥 ‘쉬었다’는 60살 미만 비경제활동인구 등을 합친 ‘사실상 실업자’는 33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일자리가 7만개 줄어든 데 이어, 5% 안팎의 양호한 경제성장률이 점쳐지는 올해에도 새 일자리는 많아야 20만개 정도라고 정부와 민간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연간 적정 신규 일자리 수가 25만~30만개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일자리 부족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금융위기 탓도 있지만, 더는 성장이 고용을 담보하지 않는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 노동부는 6일 발표한 자료에서 “우리 경제는 고용창출력(고용탄성치)이 0.214로 미국(0.629), 유럽연합(0.599), 일본(0.310)보다 더 낮은 저고용형 성장구조”라며 “특히 성장을 주도해온 수출의 취업유발계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투자가 부진해 투자의 고용창출력도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제야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오는 14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1회 국가고용전략회의가 열리고, 6월까지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고용전략이 수립될 예정이다. 노동부는 “기존의 경제·산업·교육·복지정책을 고용의 관점에서 점검해 고용창출 방향으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고용 제일주의’ 정책을 얼마나 힘있게 추진해 나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여전히 정부의 방점은 성장에 있다”고 말했다. 금재호 노동연구원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 소장은 “특히 경제부처의 경우 고용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수출·대기업·제조업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해 앞으로는 고용창출 효과가 큰 내수·중소기업·서비스업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지금까지 고환율 정책, 법인세 감세, 투자세액공제 등을 통해 대기업에 대규모 지원을 해줬지만, 대기업들은 오히려 고용을 계속 줄이고 있다”며 “이제는 그 돈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실업자를 위한 고용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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