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 ④ 보수의 복지
역대 보수정권들의 정책
역대 보수정권들의 정책
공무원에만 특혜 사회보험
재정문제 드러낸 국민연금
소득역진 의료보험 ‘결함’
인간문제 깊은 고민 안보여 1961년, 1981년, 1988년, 1998년. 이들은 한국의 사회복지 발전사를 구분짓는 분기점이 되는 해이다. 1961년은 한국의 사회복지제도가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도화를 시작한 해다. 이때는 5·16 쿠데타가 성공한 해이고, 박정희는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확보한 정권의 정통성을 어떤 식으로든 확보해야 했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일본의 법을 거의 복제하여 우리나라의 생활보호법을 만들고 아동복리법,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생법안을 무더기로 만들게 하였다. 뒤이어 의료보험법과 군인연금법, 산업재해보상법 등과 같이 사회보험에 기초가 되는 법을 잇달아 만들고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공식적 기반은 마련된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지형을 치명적으로 일그러뜨린 시기였기에 결코 제도의 공식기를 열었다는 의미로는 상쇄되기 어렵다. 철저히 시혜의 산물로 시작된 생활보호제도, 국가통치에 우군인 군인, 공무원 등에게 특혜적 조치를 준 각종 사회보험제도, 국가는 없고 민간 복지사업자만 있게 만든 사회복지제도 등등의 틀은 두고두고 바로잡기 힘든 왜곡된 복지지형의 기초가 되고 만다.
여기에 또 한번의 왜곡이 더해진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부에 의해서다. 1981년은 생활보호제도가 손질되고,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와 같은 복지서비스 분야에도 법률적,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진다. 그 시대 아이러니의 가장 절정은 관공서와 학교마다 ‘복지사회의 건설’이란 문구가 국정기조의 하나로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복지사회,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군사정권이 차용함으로써 진보적 지식인과 대중에게 이들 용어는 한참 동안 백안시되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된다. 공교롭게도 여기까지의 시기는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나름 심취한 시기이므로 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러나지 않았다. 비록 그런 요구가 있었다 해도 서슬 퍼런 독재정부하에서는 억압된 의식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복지발전의 초기단계란 자본주의의 한계를 뼛속 깊이 자각하고 체제의 유지를 위해 혁신적인 발상으로 진보진영에 한발 앞서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서구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탄생한 것과는 사뭇 다른 과정이다. 이후 군사정권의 변형인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을 전후하여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산되고 국민연금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영유아보육제도가 시작되는 등 또 한번의 전기가 마련된다. 그러나 오히려 우파의 포퓰리즘의 산물인 국민연금제도는 재정구조에 치명적인 결함을 낳게 만들었고 의료보험 역시 소득역진적인 구조로 인해 이후 10년간 극심한 논쟁거리를 남기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복지 역사에 어떤 식으로든 특이한 족적이 없다. 이렇듯 정부 수립 이후 50년을 줄곧 집권한 보수정권은 한국의 복지에 있어 대부분의 제도를 도입하고 그 밑그림을 그리는 구실을 했다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문제나 시장체제의 한계에 대해 깊은 철학이 깃든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자처한다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수정권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이전 50년간의 보수정권과는 다른 철학을 갖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감세와 작은 정부,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 것 같은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을 가부장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서민’이란 용어가 너무 애용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전 보수정권이 보여준 외형상이나마 혁신적인 형태의 복지제도 하나도 실제화된 것이 없다. 이미 임기의 반이 지나고 있고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가며 이미 국가채무는 도를 넘고 있는데….
다음 정권을 놓고 겨룰 보수진영의 주자 가운데 복지국가를 정면으로 내세우거나 대담한 발상의 복지제도를 들고 나올 여지가 보인다. 그만큼 중산층의 붕괴로 인해 민심 이반의 가능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역시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는 끝내 결과의 차이를 넘을 수 없다. 다만 보수진영의 좌클릭은 한국에서 아직도 덜 진보한 진보진영이 더욱 좌클릭하여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복지국가의 역사는 전진할 것이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재정문제 드러낸 국민연금
소득역진 의료보험 ‘결함’
인간문제 깊은 고민 안보여 1961년, 1981년, 1988년, 1998년. 이들은 한국의 사회복지 발전사를 구분짓는 분기점이 되는 해이다. 1961년은 한국의 사회복지제도가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도화를 시작한 해다. 이때는 5·16 쿠데타가 성공한 해이고, 박정희는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확보한 정권의 정통성을 어떤 식으로든 확보해야 했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일본의 법을 거의 복제하여 우리나라의 생활보호법을 만들고 아동복리법,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생법안을 무더기로 만들게 하였다. 뒤이어 의료보험법과 군인연금법, 산업재해보상법 등과 같이 사회보험에 기초가 되는 법을 잇달아 만들고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공식적 기반은 마련된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지형을 치명적으로 일그러뜨린 시기였기에 결코 제도의 공식기를 열었다는 의미로는 상쇄되기 어렵다. 철저히 시혜의 산물로 시작된 생활보호제도, 국가통치에 우군인 군인, 공무원 등에게 특혜적 조치를 준 각종 사회보험제도, 국가는 없고 민간 복지사업자만 있게 만든 사회복지제도 등등의 틀은 두고두고 바로잡기 힘든 왜곡된 복지지형의 기초가 되고 만다.
여기에 또 한번의 왜곡이 더해진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부에 의해서다. 1981년은 생활보호제도가 손질되고,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와 같은 복지서비스 분야에도 법률적,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진다. 그 시대 아이러니의 가장 절정은 관공서와 학교마다 ‘복지사회의 건설’이란 문구가 국정기조의 하나로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복지사회,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군사정권이 차용함으로써 진보적 지식인과 대중에게 이들 용어는 한참 동안 백안시되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된다. 공교롭게도 여기까지의 시기는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나름 심취한 시기이므로 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러나지 않았다. 비록 그런 요구가 있었다 해도 서슬 퍼런 독재정부하에서는 억압된 의식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복지발전의 초기단계란 자본주의의 한계를 뼛속 깊이 자각하고 체제의 유지를 위해 혁신적인 발상으로 진보진영에 한발 앞서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서구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탄생한 것과는 사뭇 다른 과정이다. 이후 군사정권의 변형인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을 전후하여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산되고 국민연금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영유아보육제도가 시작되는 등 또 한번의 전기가 마련된다. 그러나 오히려 우파의 포퓰리즘의 산물인 국민연금제도는 재정구조에 치명적인 결함을 낳게 만들었고 의료보험 역시 소득역진적인 구조로 인해 이후 10년간 극심한 논쟁거리를 남기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복지 역사에 어떤 식으로든 특이한 족적이 없다. 이렇듯 정부 수립 이후 50년을 줄곧 집권한 보수정권은 한국의 복지에 있어 대부분의 제도를 도입하고 그 밑그림을 그리는 구실을 했다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문제나 시장체제의 한계에 대해 깊은 철학이 깃든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자처한다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수정권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이전 50년간의 보수정권과는 다른 철학을 갖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감세와 작은 정부,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 것 같은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을 가부장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서민’이란 용어가 너무 애용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전 보수정권이 보여준 외형상이나마 혁신적인 형태의 복지제도 하나도 실제화된 것이 없다. 이미 임기의 반이 지나고 있고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가며 이미 국가채무는 도를 넘고 있는데….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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