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희생자 유족 양경진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할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개인청구권' 한·일 과제로 급부상
해결방식 따라 북·일 수교 큰 영향 한-일 협정 문서에는 과거 100년에 걸친 모순과 어둠이 녹아있다. 동시에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미래가 함께 담긴 셈이기도 하다. 한-일 협정을 둘러싼 여러 쟁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은 물론, 일본·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한-일 협정이 부각된 배경 = 한-일 협정 청구권 관련 문서 공개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9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제정한 ‘징용배상 특별법’(헤이든법)이다. 이 법은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피해 배상 청구에 대한 시효를 2010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덕분에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들의 피해배상 청구 소송의 길이 미국 법정에서 열리게 됐다. 이에 따라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될 수밖에 없는 개인 청구권에 대한 한-일 협정 당시의 논의 내용이 쟁점으로 불거졌다. 이를 다시 국제적 의제로 부각시킨 것은 북-일 수교 문제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반면 교사’의 대상으로 65년 한-일 협정이 떠오른 것이다. 이번 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듯이 과거사 사죄와 피해자 보상 문제를 ‘미봉’한 전례는 수교 과정에서 북한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청산 문제를 주요하게 다룬 것도 영향을 줬다. 한-일 협정은 일제 시기에 대한 평가·정리 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번 문서 공개 결정도 노무현 정부의 ‘결단’이 큰 구실을 했다.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미묘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저항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과거사 극복의 계기 = 다소 복잡한 쟁점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결국 65년 한-일 협정은 ‘과거사 평가와 피해자 개인의 권리를 외면한 두 나라 권력집단의 정치적 야합’이라는 평가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학)는 18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특성이 한-일 협정 문서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며 “일본 정부도 박정희 정권을 ‘키워야 할’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로 생각했고, 이런 권력자들의 이익에 따라 두 정부가 과거 사죄와 피해자 보상 문제를 덮고 쉽게 ‘야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것은 역사의 피해 당사자인 ‘개인’들이다. 개인 청구권이 핵심쟁점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일제에 유린당하고 두 나라 정부로부터 외면당한 피해자 개인이 뒤늦게나마 한국과 일본 두 나라로부터 보상받을 길을 개척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95년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일제 강점 때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는 60만~100만명, 군인군속 피해자는 60여만명에 이른다. 일본으로 끌려가지 않고 이땅에서 강제노역 등을 한 경우를 포함하자면 그 규모는 당시 조선 인구의 3분의 1인 700만명 수준이다. 군위안부 등 정확한 실태조사가 미처 이뤄지지 못한 인권침해 사례를 감안하면, 일제 침략이 이땅에 남긴 피해는 가공할 수준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45년을 기준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가져간 자본 수탈액만 30억달러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잘못된 역사를 사죄하고, 개별 피해자들을 위로·보상할 구체적 방법을 구하는 것이 곧 한-일 과거사 청산의 핵심인 것이다. 이영호 인하대 교수(사학)는 “이제 과거사 정리 문제가 한국 내부가 아니라 일본 등 인접국으로 확대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개인 청구권 해결을 매개로 한 과거사 청산 문제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부의 과제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 동북아 평화공동체로 가는 길 =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문제다. 이는 북-일, 중-일 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 또는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 형성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한국학)는 “당시 그 돈을 경제개발에 잘 썼으니까 이제 와서 문제삼기는 곤란하다는 일부 국내 언론의 논리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을 희생한 두 나라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따지는 동시에 당시 한-일 협정을 서둘러 맺게 한 미국의 역할 등도 총체적으로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고한 개인을 역사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오늘의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과도 관련이 있다. 박 교수는 특히 “동북아 평화의 가장 큰 관건은 북-일 수교 문제”라며 한-일 협정 문제가 북-일 수교에 끼칠 영향에 주목한다. 그는 “북-일 수교는 일본의 과거사 사죄의 측면은 물론, 북한에 대한 한-미-일 동맹의 고립화 전략이 수정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이 개인 청구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피해 배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북-일 수교의 실마리도 풀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한-일 협정의 복잡한 쟁점이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상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개인 청구권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일본의 과거사 사죄와 적극적 보상책 마련 △한국 내부의 과거사 청산 및 피해자 구제 등이 이뤄져야 하고, 이것이 △북-일 수교에 긍정적 영향을 주면서 △동북아 평화질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연쇄고리’의 첫단추가 한-일 협정을 넘어선 대안 마련에 있는 셈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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