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불법사찰 문제등 민주적 논의 막는 지도부에 불만
“한나라당이 무슨 군대냐. 여당이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5일 이렇게 말했다.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고흥길 정책위의장 등 당 핵심 지도부가 감세철회 논쟁, 민간인 불법사찰 등 최근 현안에 대해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며 의원들의 민주적 논의를 억제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여당이 표류하고 있다. 안상수 대표 체제가 총체적인 리더십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감세, 대포폰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이 지도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채 표출되고 있다. 7·14 전당대회가 끝난 지 4개월이 다 됐지만, 내부 의견 차로 2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은 아직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안 대표와 김 원내대표, 고 정책위의장은 ‘감세철회 불가론’을 고수했다. 문제는 지도부가 감세철회를 검토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과정이 ‘청와대 눈치 보기’로 비친 점이었다. 의원 45명이 연판장을 돌려 의총 소집을 요구하면서 지도부의 권위는 크게 실추됐다.
지도부는 조정 능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청와대의 대포폰 지급 사실이 드러난 이후 5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정두언·홍준표·서병수 의원 등 3명이 ‘검찰 재수사’를 촉구하면서 지도부는 공식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혼돈의 원인은 다양하다. 일단 안상수 대표 개인의 리더십 한계를 지목하는 시각이 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안 대표가 친이계의 지원을 받았지만 압도적 지지를 얻지 못했고,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지 않아 리더십의 한계를 노출했다”고 말했다. 대표의 존재감이 떨어지면서 지도부의 리더십 위기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지도부의 자율성 한계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여당 지도부가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청와대에 끌려다니면서 스스로 권위를 허물어버렸다는 얘기다. 한 재선 의원은 “현안에 대한 결정권이 지도부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지도부의 리더십이 와해되는 지경이 됐다”며 “청와대가 여당 지도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여권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이 2012년 총선을 민감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대목도 지도부의 리더십 약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다음 총선을 생각하는 의원들은 당 지도부나 청와대의 기류보다 국민여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의 수직적 당청관계가 이어지면 지도부의 리더십 약화가 가속화하면서 여당의 안정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