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9일 오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단독 진행하려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손팻말을 든 채 단상 주변을 둘러싸 회의 진행을 막고 있다. 단상 위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의 이주영 예결특위 위원장을 사이에 두고 이종구 한나라당 간사(오른쪽)와 서갑원 민주당 간사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사찰 ‘몸통’ 수사 결국 청와대로 향해
거센 정치공방속 급격한 레임덕 우려
여당, 재수사 버금가는 타협 모색할듯
거센 정치공방속 급격한 레임덕 우려
여당, 재수사 버금가는 타협 모색할듯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떠밀려 갈 것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그랬다. 청와대는 버티지만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로 지목받는 인사들의 최종 종착점은 감옥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 한 고위당직자는 19일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가 대포폰, 국정원 파견 이창화 전 행정관의 불법사찰 등 잇따르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재수사 불가’를 고수하고 있지만, 결국 여론에 굴복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 요지부동 청와대 청와대와 한나라당 핵심부는 여전히 “새로운 사실이 없다”며 야당의 국정조사는 물론, 여당 최고위원들 다수가 요구해온 재수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손학규 민주당 대표실을 찾아 국회 정상화를 위한 해법을 모색했다.
손 대표는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단순히 야당의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사실상 이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이미 검찰에서 다 수사했던 내용”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 몸통 드러날까 재수사 막아? 한나라당 안에선 청와대가 이른바 ‘몸통’으로 수사의 칼날이 다가갈까 우려해 재수사나 국정조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친이 직계 한 의원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재수사를 수용할 경우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수사 대상이 될 텐데, 그들의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알 수 없어 재수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이 전 비서관, 박 차관 등이 검찰의 재수사 대상에 오를 경우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사찰의 몸통’ 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다른 한 핵심 당직자도 “재수사가 진행될 경우 이영호 전 비서관, 박영준 차관이 불법사찰의 모든 책임을 순순히 뒤집어쓸 가능성은 적다”며 “결국 더 윗선으로 파문이 확산될 수밖에 없어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선 ‘몸통’ 확인 여부에 관계없이 재수사나 특검 과정에서 정치적 치명상을 얻을 것을 우려해 선을 긋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제기되는 의혹들은 모두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왔던 것들로, 사찰 논쟁은 이미 법률적인 이슈가 아닌 정치공세의 이슈가 돼버렸다”며 “재수사나 특검을 하는 순간 수사 주체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청와대를 향한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옷로비 사건처럼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채 정권만 레임덕에 빠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밀려선 안 된다는 얘기다.
■ 재수사로 막판 절충 그러나 한나라당 안에선 청와대도 결국 재수사 수준의 정치적 절충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친이계 한 의원은 “민주당이 청목회 수사에 응하기로 하고,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정조사를 국회 정상화의 실질적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며 “재수사로 야당과 절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재수사에 대해 “국민적 감정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재수사는 민감한 문제라서 좀더 고민해 보겠다”며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원내대표실 한 관계자는 “김 원내대표도 재수사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당 등 야당이 ‘재수사’를 수용해 예산 국회를 정상화한다면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황준범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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