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 서소문별관 브리핑룸에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오 시장은 이날 5시 이임식을 끝으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오세훈 시장직 사퇴 회견
주민투표 강행·시장 사퇴로 인한 혼란 ‘사과’ 없어
“과잉복지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 정당성만 강조
“건강한 담론의 정치문화가 저의 책무” 재기 비쳐
주민투표 강행·시장 사퇴로 인한 혼란 ‘사과’ 없어
“과잉복지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 정당성만 강조
“건강한 담론의 정치문화가 저의 책무” 재기 비쳐
26일 1년 남짓 만에 시장직에서 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기자회견에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가 보여준 민심에 대한 존중도, 주민투표 강행으로 빚은 갈등에 대한 진정성 담긴 사과도 읽어내기 어려웠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청 별관 브리핑실에 선 오 시장은 침울해 보이는 얼굴로 미리 준비한 A4용지 6장 분량의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사퇴 발표문의 상당 분량은 △주민투표의 정당성에 대한 강조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직설적 비판 △한강르네상스·디자인서울 등 자신의 역점사업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채워졌다. ‘소득 하위 50%에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데 반대하는 민심이 담긴 주민투표 결과를 되돌아보거나,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강행해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빚은 것에 성찰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권자 836만여명 가운데 주민투표에 참여한 ‘215만명(25.7%) 시민’에게는 “아쉽게 투표함을 닫게 된 점, 매우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그분들의 열정과 애국심’을 치켜세웠다.
반면 그는 “과잉복지의 최대 희생자는 평범한 시민, 바로 내가 될 것이란 사실을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며 ‘대시민 훈계’도 했다.
오 시장은 투표율 미달로 개표도 못한 주민투표를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새 지평”,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내 사퇴를 계기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민투표에는 실패했지만 과잉복지 논쟁을 주도해 앞으로 정치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풀이가 나온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문화를 건강한 담론의 정치문화로 바꿔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무”라는 대목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는 “현재 서울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충언한다”며 “삶의 휴식 공간을 늘려가고 다듬는 일을 토목건축이란 이름으로 깎아내린다면 서울 시민의 안전과 삶의 질은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강르네상스·디자인서울 사업은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오후 5시 서울시청 별관 대회의실에서 연 이임식에서도 주민투표에 대해 “복지의 방향을 고민하는 화두를 던지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은 성명을 내어 “오 시장의 임기 중 사퇴는 지방자치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오 시장 사퇴 뒤 서울시는 지난 1월 공포돼 현재 발효중인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대법원 소송을 즉시 취하하고,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나타난 서울시민들의 뜻을 담아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2학기 초등학교 5·6학년에 대한 급식 예산 지원을 차질 없이 준비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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