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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총성 7발에 뒤흔들린 삶

등록 2005-01-20 18:59



사진 (왼쪽) 문세광의 위조여권을 만들어 준 이유로 한국 수사당국에 공범으로 지목된 일본인 요시이 미키코. <연합> / (오른쪽) 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 합창단원으로 참석했다가 문세광씨를 겨낭한 경호원의 총격으로 숨진 장봉화(당시 성동실업여고 2)양이 극장 밖으로 들려나오고 있다. <보도사진연감> 자료사진

■ 그때 그사람들 - 문세광 박대통령 저격사건

문세광의 대통령 부인 저격 사건은 수많은 이들의 인생행로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사건 당시의 충격과 파장도 컸지만, 뒷이야기와 여진도 오래 계속됐다.

1974년 사건 직후의 현장 상황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이는 서울시경찰국 감식계장이었던 이건우 경감이다.

당시 수사본부 수사관으로 사건 발생 다음날인 8월16일 현장을 감식했던 이씨는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 뒤인 89년 <월간 다리>에 실린 소설가 노가원씨와의 인터뷰에서 “육영수씨는 문세광의 총에 맞은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씨는 △현장검증 전날인 8월15일 저녁 청와대 경호실이 현장의 탄두를 모두 수거해 간 점 △사건 당일 모두 7발의 총알이 발사됐는데 탄흔은 6개 밖에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진범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가 이런 폭로를 한 것은 정년퇴직(83년) 뒤 6년만이었다.

%%990002%% 이씨는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온 경찰의 중립화를 위해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라며, 당시 수사본부가 검문·검색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수십명의 경찰관을 파면하고, 구속한 사실에 대해 매우 억울해 했다. 그는 그로부터 5년 뒤인 9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수사본부는 김일두 서울지검 검사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정치근 서울지검 공안부장(87년 법무부 장관 역임), 김영훈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중앙정보부 6국장, 김구현 내무부 치안국 감식계장과 이건우 경감 등 6명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체포된 문세광을 처음 수사한 곳은 수사본부가 아니었다. 문씨는 범행 뒤 곧바로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 분실로 옮겨졌다. 문씨는 사건 다음날인 16일 오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입을 연 사람은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법률보좌관이었던 김기춘(현 한나라당 의원) 검사였다.

감식경찰 15년뒤 “문씨 총에 안맞아” 양심선언
'자칼의 날'로 문씨 입 연 검사는 김기춘 의원

%%990003%% 김 검사는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침대에 누워있던 문씨에게 “<자칼의 날>을 읽어봤나?”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문씨는 “‘센세이’(선생님)도 읽어보셨냐”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 한다. <자칼의 날>은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를 다룬 책으로, ‘암살범의 교과서’로 통한다. 김 검사는 “네가 바로 쟈칼이 아니냐”라고 추궁했고, 문세광은 “그렇다. 나는 자칼이다”라고 답했다.

문씨는 이어 △권총은 오사카 고쯔파출소에서 훔쳤다 △범행 지시는 총련 오사카 서지부 정치부장인 김호룡한테서 받았다 △74년 5월3일 밤 북한의 만경봉호에서 47살 가량의 북한 사람을 만났다는 등의 범행 관련 사실을 털어놨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이 사건 관련 기록이 공개된 20일 “문씨는 그림을 잘 그렸다. 권총을 훔친 일본 파출소의 풍경과 권총 케이스를 어디에 버렸는지 강가 나무까지 그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총련 간부들에 대한 상세한 진술 등으로 볼 때 문세광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990004%% 그러나 일본 수사 당국은 한국 정부의 발표 내용 가운데 김호룡과 만경봉호 관련 부분에 대해선 증거가 없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수사 당국에 의해 공범으로 지목됐던 일본인 요시이 미키코도 마찬가지다. 미키코는 고등학교 동창생인 문씨가 은행 돈을 빌리는 데 필요하다며 여권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남편의 호적으로 여권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결국 미키코는 출입국관리령 위반 방조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국립극장 현장에선 경호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억울한 죽음도 나왔다. 문세광이 체포된 뒤에야 연단 위로 쏟아져 나온 경호원 가운데 한 사람이 객석을 향해 총을 쏴, 합창단원으로 와 있던 장봉화(당시 성동실업여고 2)양을 숨지게 한 것이다. 정부는 그 뒤 장양의 언니를 취직시켜주고 남동생의 학자금을 대줬다고 한다.

%%990005%% 문세광을 변론했던 국선변호사는 서울 형사지방법원장을 지내고 변호사로 개업했던 송명관씨와 서울지검 검사 출신의 차영조씨였다. 송 변호사는 이미 사망했고, 차 변호사는 현재 병원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해 있는 상태다. 이들은 “극형 만은 면해달라”는 소극적인 변론을 폈다.

문세광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유종근 부장판사가 주심이었고, 이공현 김의열 두 판사가 배석이었다. 이공현 판사는 현재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헌법재판관에 내정돼 있다. 이재성 류이근 김남일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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